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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는 클라스, 하상응 교수의 미국의 흑백차별, 400년 계급의 역사..

by 로토루아8 2020.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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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just wanna live 키드론 브라이언트 12세 흑인 소년.

버티기 위해 내가 할수 있는 모든 걸 해요. 하지만 제 주위를 둘러보고 제 친구들에게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매일 먹잇감처럼 사냥당하고 있어요. 우리는 갈등을 원하지 않아요. 우리는 충분히 투쟁했어요. 단지 살고 싶을 뿐..

선망의 대상이었던 미국. 그 이면을 다룬 수업.

믿을수 없는 일이 버젓이 벌어진일.

지난 5월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숨진 플로이드.

8분 46초동안 경찰의 무릎에 목이 눌려 결국 사망함.

현장에 함께 있었던 아시아계 경찰. 

미국은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멜팅 팟.

올해 5월 우발적으로 일어났다고 보기는 어렵고 미국 인종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보면

지난 5월 발생한 플로이드 사건이 역사적으로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음.

백인 경찰이 흑인을 살해한 사건?

개인적 차원의 인종차별이 아니라 미국 정치제도에 녹아있는 차별.

제도적 인종차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함. 제도적 차별의 배경은 정치에요.

국가로부터 동등한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는 국민. 현직 미국의 대통령은?

많은 비난과 지탄을 받는 것이 사실임.

오늘의 강연 포인트는 통념으로 알고 있었던 사실들이 뒤집힐수 있는데

우리고 통념적으로 알고 있던 답들.. 좀 재고해 볼 여지가 있고 일부는 사실이 아닐 수 있어요.

1619년 약 400년 전 미국 땅에 첫 등장한 흑인 노예.

어디서부터 미국의 흑백 갈등과 인종 문제를 봐야 되느냐 시점을 정해야 하는데

남북전쟁에서부터 시작. 1861년~ 1865년.

우리가 알고 있는 남북 전쟁은? 노예제 찬성하는 남쪽과 반대하는 북부의 싸움?

미국 남부는 노예제가 합법이에요. 한 국가에 두제도가 공존한 남북전쟁 전.

두 지역이 합의하는 과정에서 남부 11개 주가 모여 독립선언을 함. 남북전쟁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은

연방제에 대한 입장차도 중요한 요인이에요.

노예수입부터 남북전쟁까지~

식민지 시절인 1619년 미국 땅에 첫 등장한 흑인 노예.

버지니아주를 시작으로 다른 남부지역으로 팔려 간 노예들.

17세기 남부의 주 산업= 담배, 목화 농업이에요. 가장 싸게 얻을수 있는 노동력이 뭘까?

백인들 생각엔 우리와 많이 다른 사람같지 않은? 흑인 노동력을 강제착취하기 시작함.

반면 상공업이 주 산업이었던 북부. 지금의 미국과 달랐던 17세기.

남부보다 북부 발전이  상대벅으로 뒤떨어졌던 시기.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남부의 화려한 파티 장면이 등장.

당시 부유했던 남부 경제력을 짐작해 볼수 있는 장면.

또 하나의 포인트는 흑인 노예가 다수 등장함.

상품처럼 거래가 된거죠.

가족들과 생이별 하며 하루아침에 노예로 전락. 당시는 미국이 영국 식민지였던 시절.

1607년~ 1776년 13개의 서로 다른 식민지로 존재.

식민지 시절 미국 땅에 살고 있던 정치인들은 어떻게 생각했냐? 

옵션1 13개의 독립정부를 수립. 옵션 2. 하나의 국가로 통일.

영국이 침공할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뭉쳐야 살지 흩어지면 죽는다.

결국 연방제를 선택한 13개주. 많은 권력을 연방정부에 위양.

한편, 국방, 외교 등의 권한은 연방정부에 위임하기로 한 미국.

1787년 연방헌법 초안을 마련.

1789년 연방 헌법 공식 발효.

이부분이 많은 분이 잘 인지 못하시는데

삼권분립 아이디어를 제시했던 유럽의 일부 정치철학자들.

정치에 도입한 최초의 케이스는 미국이에요.

미국연방제 또 하나의 특징은 입법, 사법, 행정부를 구성하기 시작.

이때 대형 싸움이 벌어집니다. 연방의회 구성중 발생한 갈등. 13개 주의 인구들이 달랐던 거에요.

연방정부 만드는건 좋아.! 하지만 의원들을 어떻게 뽑을지? 인구별로하자!

인구수에 비례해 의원수를 정하자고 주장.

이럴거면 왜 연방제를 해?!

인구수가 적은 주의 반발을 수용. 상원과 하원 양원제로 타협을 봄.

상원의원은 각 주별로 2명씩 배정. 당시 인구수가 적은 주의 목소리를 대변.

그런데 또 다시 발생한 문제.

하원의원은 인구수에 비례해 정한다면 남부사람들은 노예를 인구수에 포함시킨다고함.

평소엔 인간취급안하다가?! 하원 의석수를 배정하는 과정에서 왜?? 이게 북부의 반응이었어요.

북부와 남부 싸움의 결과는? 

남부 노예는 5분의 3명으로 ..

실제 미국 헌법에 명시된 조항.

단지 인구수 계산을 위한 조항임.

시민권 보장이 아님. 1787년 제정된 미국 최초의 헌법.

흑인이 등장한 첫 사례 3/5조항.  헌법에 흑인이 등장한 두번째 사례.

기존 관행대로 계속해서 노예를 수입하려 한 남부. 북부에서는 반발한거죠.

노예수입이 많아지면 남부 인구가 증가하고 하원의원이 증가하게되잖아요.

그럼 북부 주에서는 항의를 하겠죠. 열심히 애를 낳지 않고는 따라잡을수 없으니 그래서 마련된 두번째 조항.

정치 이권때문에 탄생한 조항이에요.

남부 이권이 연방정부에 더 반영될 것을 우려했던 것. 흑인 노예가 등장한 세번째 조항.

자유를 찾아 남부에서 북부로 도망가는 노예가 성행했던 시기.

북부에서는 발견 즉시 노예를 돌려보내야 한다는 조항.

정치 이권 다툼으로 탄생한 조항임. 북부는 인권을 옹오하고 남부는 차별?  이 상황을 이해하는데 적합하지 않은 생각이에요.

세가지 조항으로 어느 정도 봉합된 남북 갈등.

그런데 문제는! 점점 영토를 넓혀간 미국. 13개주에서 50개주로 확장을 함.

새로 편입된 주를 연방정부로 흡수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게됨.

1820년 미주리 타협.

남쪽은 노예주로 vs 북쪽은 자유주로.

두개였으니까 합의가 상대적으로 쉬운거죠.

문제는 영토를 더 확장하다 보니까 남부와 북부 갈등이 증폭하게됨

갈등을 고조시킨 또 하나의 사건이 

1850년 강화된 도망노예법이 통과.

북부에서 노예를 숨겨주면 처벌받음. 조금더 구체적이 된 거죠.

돌려줘야 한다. 안 돌려주면 처벌. 시행 세칙을 마련한 거죠.

당시 혼란스러운 상황을 잘 보여주는 연방대법원 판결.

주인 근무지를 따라 수년간 북부 자유주에 거주.

결혼과 출산을 한뒤 남부로 돌아오게 되는데.. 주인이 사망하자 자유를 선언하며 소송을 제기함.

아이는 자유인? 부모는 노예??

스콧의 주장은 1. 자유주에서 수년간 거주함.

2. 자유주에서 결혼과 출산을 함. 

자유인이 돼야 한다고 주장함.

흑인을 주인 소유물로 본 판결임.

그렇게 봉합되지 못하고 더욱 커진 남북갈등. 결국 남북전쟁이 발발함.

원칙적으로 자유인이었던 북부 흑인들. 한가지 문제가 뭐냐면. 남부에서 북부로 도망간 노예를 잡으려고 추노꾼들이 가요.

실수로 북부 흑인들을 납치함. 영화 노예12년의 내용이네요?

어느날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가 노예 수용소에서 깨어난 남자.

본인은 가족과 함께 자유인으로 살아왔다고 주장하는데..

결국 노예주 중 가장 악명 높은 루이지애나 주로 팔려 가고

인권모독과 무자비한 폭행 속에서 12년 동안 노예 생활을 하게 된다.

노예제를 둘러싼 갈등과 혼란이 극심했던 19세기.

결국 남북전쟁이 발발 1861년~1865년까지

남북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에이브러햄 링컨이에요.

우리가 알고 있는 링컨은 어떤 인물인가요?

1860년 링컨 당선 다음해 발발한 남북전쟁. 왜 링컨 당선 직후 전쟁이 났을까?

노예제에 부정적이었던건 사실. 하지만 급작스럽게 어느 한순간 연방정부가 개입해서

당장 노예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도 않았어요.

노예제가 없어져야 되기는 한데 급작스러운 노예제 폐지는 무리죠. 미국이 팽창하는 과정에서

새로 편입되는 주를 자유주로 받아서 자연스러운 노예제가 사멸됨.

가장 충격을 덜 줄수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링컨.

남북전쟁 중에 그런 선언은 했는데 1863년 노예 해방령을 공포한 링컨.

하지만 이미 연방을 탈퇴했던 남부에는 효력이 없었던 선언.

인도주의적인 선언이 아닌 정치적 선언일 수 있었던 것. 서로 충돌되는 발언을 했던 링컨.

링컨이 뉴욕 트리뷴지 편집국장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조금더 링컨 입장을 잘 이해할수 있습니다.

링컨의 1차적인 관심사는 연방이에요.

상식적으로 미국 대통령이 됐는데 내 임기중에 나라가 쪼개진다?

누구도 그런 얘기 듣고 싶지 않죠.  링컨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연방제를 유지하는거에요.

가장 큰 장애물이 노예제도임. 가능하면 평화적으로 노예제를 해결하려 하는 과정에서 이야기들이 자꾸 꼬이는 거죠.

노예제 찬성 아니고 반대?

정치적인 발언을 쏟아낸 링컨.

그런데 남북전쟁은 이미 벌어진 상황이죠.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노예해방 선언을 할수 밖에 없었던 링컨.

플로이드 사망 이후 분노한 시위대.

콜럼버스 노예상 콜스턴 등 노예제를 옹호한 인물의 동상을 철거. 폭력적인 방법까지 사용하는 일부 시위대.

반면 제도화된 차별 개선을 주장하는 또 다른 사람들. 구분해서 봐야할 문제에요.

노예제 폐지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지만 결국 노예를 해방한 링컨.

선생님의 개인적인 생각은?? 과거의 몇마디 노예제를 옹호하는 것처럼 오해되는 말 때문에 동상까지 철거하는건 과한 조치인거같다고

북부출신인 링컨의 당선후 남부의 반응은? 1860년 대선에서 북부출신 공화당에 링컨이 당선.

북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링컨.

하지만 과반수 이상 득표율을 얻는데는 실패함.

당시 남부주의 반응. 저 대통령 밑에서는 어렵겠다. 1860년 12월 남부가 순차적으로 연방탈퇴를 함.

그게 남북전쟁의 시발입니다.

1861년부터 1865년까지 미국 남북전쟁이 일어남.

노예제 유지를 주장하는 남부와 연방제를 지키려 한 북부 사이 벌어진 전쟁.

남북전쟁 당시 수적으로 열세였던 남부. 딱 하나만 생각하면 돼요.

남부의 거주민 중 상당수는 노예. 어떤 남부 노예가 남부를 위해 싸우겟어요?

남부의 백인과 노예가 함께 싸운다? 백인 병사들이 집단 반발. 노예를 철저히 배제하고 전쟁에 나선 남부 백인들.

여기서 기억해둬야 할 한가지 포인트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미국 이미지와 달리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연방정부의 힘이 약했던 시기로

남북전쟁이 발발한 19세기 중반. 출신 주에서 평생 산 미국인이 대부분. 

출신주에 대한 소속감이 그만큼 강하다는 미국인들.

19세기에는 더 심했겠죠.

남북전쟁 당시 활약한 한 인물.

남북전쟁 이전 연방군 소속 장군이었던 로버트 리.

링컨의 총애를 받기도 했던 인물이에요. 그런데 남북전쟁이 났잖아요. 링컨은 무슨 생각을 했냐면 연방군 총사령관을 제안한 링컨.


로버트 리의 고향인 버지니아주가 연방 탈퇴함.

결국 링컨의 제안을 거절한 로버트 리. 발나군인 남부연합의 총사령관으로 전쟁에 나선다.

플로이드 사건 이후 일부 시위대들이 노예해방을 방해한 인물의 동상도 철거 중.

일부 지역에서 철거되기 시작한 로버트 리 동상.

1865년 링컨의 연방군 승리로 끝난 남북전쟁. 이후 1877년까지 12년 정도 되는 기간을 미국 재건기로해서

남부에 있던 흑인 노예제를 폐지함. 남북전쟁 직후 12년 동안 그 기간을 재건기라고 부릅니다.

미국 제2의 건국. 이시기 핵심이 헌법 개정이에요.

우리나라와 미국 헌법의 차이점은

우리는 옛날 헌법을 새 헌법으로 완전히 뒤집죠. 새 헌법으로 교체하는 대한민국의 방식.

반면 미국은 1787년 최초의 헌법을 유지. 수정헌법을 뒤에 덧붙이는 방식.

미국 재건기에 만들어진 세 개의 수정헌법.

수정헌법 13조 노예제도 폐지. 당연히 남부가 바뀌어야 되는 거예요.

남부입장에서는 전쟁에 졌다고 하루아침에 바꾸라니 남부 사람들이 반발.

이 반발을 잠재워야 하는데 말과 설득보다는 무력을 사용.

연방군이 남부에 주둔한 일종의 계엄령 상태 유지.

남부에서 수정헌법 내용을 제대로 지키는지 감시하기 시작.

미국 헌법에 처음 등장한 평등원칙.

동등한 대우를 받을 대상은?

노예의  자식들도 모두 시민.

이게 속지주의 출발이죠. 우니라 일부 사람들도 저 조항의 혜택을 보고있죠

유학가서 낳은 아이들, 원정출산으로 시민구너을 부여받기도 하죠.

수정헌법 14조가 만들어지기 전 헌법에는 적혀 있는게 아닌거죠.

각 주마다 다른 법을 적용해 혼란스러운 상황이 진행됐을 것.

1864년 가장 상위법이 헌법을 통해 시민의 조건을 명확하게 규정.

자유인이 됐으니 정치참여 권한을 줘야 하잖아요.

지금까지 이권 다툼의 결과로 이어진 흑백차별.

1870년 흑인 남성에게 투표권 부여.

남북전쟁 이전에는 백인들에게만 부여됐던 투표권.

백인들에 의해 만들어져 온 주의 법들. 수정헌법 15조. 마침내 투표권을 얻게된 흑인들.

흑인을 위한 법을 만들기 시작함. 정치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표죠.

새롭게 등장한 표밭. 흑인 표를 얻기 위해 흑인을 위한 공약을 내놓기 시작. 일부 주에서는 놀랍게도 백인과 흑인 인구가 비슷한 주도 있었어요.

투표뿐 아니라 백보양보해서 남부에 살던 백인입장에서 교육을 못 받아서 글도 잘 못 읽는데~

외향적이고 인기 많은 흑인 후보가 당선됨.

엊그제만 해도 옆집 노예였는데 하루아침에 인생역전. 백인 입장에서는 되게 불편해지죠.

1870년에도 여성의 투표권은 보장 안됐던 상황. 이후 여성 투표권을 보장해주는 수정헌법 19조를 마련.

흑인남성vs 백인 여성

먼저 투표구너을 부여받은 쪽은?

12년 만에 재건기가 마감되고  1876년 치러진 19대 대통령 선거 링컨 정당 인 공화당 후보와

50.9% vs 27.9% 박빙으로 끝난 선거 결과.

선거인단 득표 역시 1표차로. 승패를 결정짓기 어려운 상황.

민주당 후보가 묘안을 짜내요. 대통령직 양보 선언을 한 틸든. 단 조건이 있음

대통령 돼서 가장 먼저 할일은  남부에 있는 연방군 철수. 쿨하게 Ok 한 공화당 후보.

북쪽 방식으로 제도가 바뀌는 것을 저지. 돌이킬수 있는 부분은 돌이켜야겠다!

잡히지 않은 질서를 유지해 온 연방군. 갑자기 또 빠져버리면. 감기기능상실. 다시 시작된 혼란.

교과서적으로 자유인이 된 것 좋은거지만  현실적으로 뭘 먹고 살아요 옛날 주인을 찾아갈수도 있잖아요.

미국 연방제도가 가진 특징 중 하나가 1791년 제정된 수정헌법 제 10조.

선거법의 상당수는 주법이에요.

우리나라는 일괄적으로 정해진 선거일, 투표시간. 전국이 모두 동일함.

미국은 달라요. 주마다. 미국은 투표 시간을 각 주에서 결정.

자칫 투표시간을 놓치는 경우도 있잖아요. 주마다 표준시간이 다르기도 하고 수정헌법 10조에 근거해 연방군 철수 후 수정 헌법을 악용하는 남부의 주법이 생겨나기 시작함.

흑인을 부랑죄, 배회죄 등의 사소한 죄목으로 잡아들이기 시작.

애초에 예외조항이 포함된 이유는? 중범죄를 지어 감옥에 간 사람들.

수용자들은 그냥 감옥에 두나요?

감옥에 있는 사람들에게 일 시키는 관행을 완전히 없앨수 없는 거고 수감자에게 보상을 줄수도 없는 노릇.

애초에 목적은 수감자 노역을 위해 만든 조항이에요.

그래서 인종차별적인 조항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

하지만 수정헌법 13조가 악용되기 시작한 조항. 흑인을 범죄자로 만드는 이미지 작업을 시작함.

숲속에서 누군가를 발견하고 공포에 떠는 백인여성.

그녀를 위협한 존재는 다름 아닌 흑인 남성. 백인은 피해자로 흑인은 잔혹한 범죄자로 묘사.

결국 백인 남성들이 흑인을 잡아 정의를 실현한다는 내용.대흥행뿐 아니라 미국 정치인들의 찬사도 받았던 영화임.

그중에 가장 잘 알려진 정치인이


우리에겐 좋은 이미지로 알려져 있지만 노골적인 인종차별주의자에요.

흑인 범죄자를 잡아서 즉결 처형하는 집단.KKK가 등장

남북전쟁 이후 자유인 신분으로 살게된 흑인들.

남부가 연방헌법을 바꿀수는 없으니까~ 주 차원에서 차별법을 만들기 시작.

20세기초 백인은 정의로운 영웅, 흑인은 범죄자라는 프레임 아래 흑인을 상대로 무차별 폭력을 가한 KKK

길거리에서 그냥 린치를 하는 거죠.

린치를 마을 축제로 여기기도 하고 잘못한 흑인은 목을 매단다. 그걸 공개적으로 한 거고! 심지어 사진으로 촬영.

엽서로 만들어 판매하는 일까지 자행함 그만큼 흑인에게 큰 공포의 대상이었던 KKK

KKK의 본거지가 있었던 인디애나주.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잔혹하게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 훗날 이들의 죽음을 기리는 예술작품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잎과 뿌리에는 피가 묻어 있지요. 검은 몸뚱이들이 남부의 산들바람에 흔들려요.

포플라 나무에 이상한 열매가 걸려 있어요.

20세기초 처절하게 희생당한 흑인들을 묘사한 곡. 

상냥한 남부의 전원풍경.

여기 이상하고 슬픈 열매가 있어요.

끝나지 않은 차별의 역사.

1896년  미 연방대법원은 어마어마한 판결을 내려요.

수정헌법 14조에 대한 연방대법의 해석이 담긴 판결.

자신이 예약한 기차 일등석에 올라탄 흑백 혼혈인 호머 플래시.

1896년 연방대법원까지 가게된 소송. 왜 흑인과 백인 자리를 분리?

수정헌법 14조 위배라는 주장. 반대측 주장은 흑인을 못 타게 한건 아니잖아.

남부 측은 동등한 서비스를 제공했다고 주장. 남부 정치인 승소.

흑백 분리는 수정헌법 14조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해석.

백인 지역을 침범한 흑인이 문제? 백인 입장에서 동등한 서비스를 제공했다고는 할수 있죠.

결국 문제는 

흑백 분리는 철저하게 서비스 제공은 소홀함.

학교 화장실, 버스까지 철저히 분리. 최근 영화 중에 그린북이라고

1960년대 백인 운전기사와 남부로 떠난 흑인 피아니스트 돈 셜리

남북에서 흑인이 이용할수 있는 시설을 표시해둔 가이드북이 그린북이에요.

남부에서 연주를 하던 중 화장실을 이용하려는 돈 셜리.

흑인용으로 따로 분리된 화장실.

연주 전 백인 동료들과 식사를 하려는 돈 셜리.

그런데 1896년 내려진 연방대법원 판결.

전국에 적용 되는거죠. 북부에서도 헌법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할수 있게 된 판례.

예를 들어 남부에서 북부로 이주한 한 사업가.

남부사람이니까 북부에 살고 있지만 흑인과 백인은 같이 밥을 못 먹어

구내식당에서 흑백분리. 그동안 살아온 방식대로 남부의 흑백차별을 북부에 적용. 그 근거가 바로 여기 있는 거죠.

연방대법원이 제시한 분리 평등 법칙. 북부에서도 남부 방식적용은 헌법에  위배되지 않음.

미국 연방 군대가 있을거 아니에요. 남북과 북부 출신이 함께 복무. 남부출신 백인이 난리 나는 거에요.

군인 사기에 문제 생긴다고 판단. 연방군이 백인과 흑인 군대를 따로 뒀어요.

백인과 흑인을 철저하게 분리했던 미국 연방군.

역사적으로 봤을때 공식적으로 흑백이 섞인 미군이 참전한 전쟁.

첫케이스가 1950년 한국전쟁임.

1948년 정식으로 채택된 흑백부대. 이후 처음으로 참전하게 된 한국전쟁.

교육영역에 적용된 분리 평등 원칙.

1948년 오클라호마 주립대 법학전문재학원 사례를 보면. 오클라호마주에 살던 흑인 학생

비싼 사립 전문대학원은 못 가겠고 살고 있는 주를  떠나고 싶지도 않고 흑인 학생의 픽은 오클라호마주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그런데 단 한번도 흑인이 간적 없어요. 하지만 백인 전용 대학원은 아닐 거라 생각했던 흑인 학생.

분리하되 평등해야 하잖아요. 백인 전용이 있으면 흑인 전용이 있어야 되잖아요.

흑인 전용은 없던거에요. 흑인이 갈 법학전문대학원이 없다!!

논리적으로 완벽.  입학을 허가하라는 판단을 내린 법원. 졸속으로 흑인 법학대학원 설립.

다시 법에 호소한 흑인학생. 교수진, 동료, 학생, 커리큘럼까지 엉망임. 마침내 원했던 학교에 입학함. 그런데

자리가 다 정해져 있던 거에요.

인종차별 심각성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로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

노골적으로 유대인을 차별하며 독일인을 결집 시켰는데 나치 수뇌들이 협의하는 과정에서

그교과서가 됐던 미국 남부법.

인류역사상 가장 잔인하고 끔찍한 차별과 학살이 시작된다.

나치도 벤치마킹한 남부법.

온몸으로 고통을 느꼈을 흑인들. 평등을 주장하는 정치인을 뽑는다거나 그런 노력을 하지 안았을까요?

흑인도 투표를 해야 해요.

1877년 재건기가 끝난뒤 남부주의 상황은 투표를 방해하는 주법이 우후죽순 등장함.

시험을 통과한 사람만 투표 가능함. 백인 유권자에게는 cat 고양이를 쓰라고하고

흑인 유권자를 차별하는게 아니라 이들의 주장은 정치를 아는 유권자만 참여해 달라는 뜻.

인종차별법이 아니라고 주장. 세금을 내는 유권자만 책임 있는 투표?!

그래서 가난한 백인들이 반발. 그들을 선별적으로 구제하기 위해서 

할아버지 조항을 만들기 시작. 투표세를 낼수 없다면 할아버지가 투표한 것을 증명하라.

이 주법들이 만들어 낸 결과 수정헌법 15조로 투표권을 얻은 흑인들. 처음에는 흑인 투표율이 엄청 높아요.

그런데 이런 수법으로 흑인 투표율이 하락함.

마음껏 차별하고 짓밟아도 주법의 차별과 연방정부의 묵인. 계속 차별을 하죠.

공식적으로는 1865년 폐지된 노예제. 이후 출생한 흑인들은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임.

조직을 좀 하려고 해도 의식을 가진 사람이 모여야 하는데 1950년대 이전까지 흑인 민권운동 지도자가 부재.

195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흑인 민권운동.

본격적인 흑인 민권운동의 역사는 다음 시간에!!


<출처: jtbc 차이나는 클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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