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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 산타도 몰랐던 크리스마스의 새빨간 거짓말: 블랙 프라이데이의 탄생.

by 로토루아8 2024.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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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나눔의 분위기를 만든 결정적인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64년간 대영제국의 최전성기를 이끈 한 사람, 빅토리아 여왕이죠.
 
 
빅토리아 여왕은 대영제국 황금기를 이끈 대영제국, 아일랜드 연합왕국, 인도의 군주로 크리스마스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죠. 궁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선물을 나눠줬던 빅토리아 여왕. 이런 선행이 알려지며 전국적으로 자선 활동이 확산됩니다.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을 배려하기 시작한 때가 바로 이 시기입니다.  부유한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에게 선물을 주며 생겨난 이벤트입니다. 빅토리아 여왕 시기에 전파된 박싱데이.
12월 25일과 26일 직원과 하인들에게 휴가도 주고 크리스마스 선물 박스도 건네줍니다. 

 

박싱데이는 크리스마스 다음 날을 뜻하는 말로 많은 영연방 국가에서 크리스마스와 함께 휴일로 정하여 성탄 연휴로 즐기고 있습니다. 산업혁명의 이미지를 벗어나고자 하는 건전한 의미죠. 여기에 상업주의를 만나며 극적인 변화가 생기는데 쇼핑하는 날!! 바로 박싱데이가 자본주의 의미로 바뀌게 되고 11월 24일 블랙 프라이 데이가 됩니다. 박싱데이가 자본주의적 의미로 바뀌게 됩니다. 

 

블랙프라이데이란?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쇼핑 인파로 인해 극도로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표현하며 블랙이라는 단어를 썼다는 설에 있습니다.  11월 24일부터 크리스마스까지 연말 쇼핑의 절정인 기간이죠. 

 

영국에선 축구와 관련이 있다던데, 영국 프리미어 리그는 주로 주말에 경기를 합니다. 박싱데이에는 경기를 하는 전통이 있고 여러 컵 대회가 열리는 시기와 맞물려 평일에도 추가 경기가 생깁니다. 해외 축구 팬들 사이에서는 빡센 데이로 불리기도 한다고 해요. 크리스마스 변천사가 쾌락, 금욕, 나눔, 상업주의적인 모습까지 !!

 

 

 

크리스마스에 생긴 또 다른 나눔 문화가 있습니다. 

초창기 미국은 청교도인들이 많아 크리스마스가 대중적이지 않았습니다. 1891년 빈번했던 선박 좌초 사고, 이재민과 도시 빈민 수가 늘어나며 돈을 모으게 되는데 

 

 

이재민과 도시 빈민을 돕기 위한 돈을 모으기 위해 고민하던 한 인물은 이것ㅇ르 이용해서 성공적으로 기부금을 모으는데요. 이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냄비입니다. 샌프란시스코 이재민을 돕기 위해 냄비를 이용한 것. 구세군은 1865년 영국에서 시작되었고, 

 

 

목사 부부가 빈민가에서 자선 활동을 한 것이 시초입니다. 

구세군 the salvation army은 각 지역마다 사령관을 두고 마치 군대처럼 운영되어 구세군이라는 명칭이 붙게 되었습니다. 

 

 

역대 최고의 문구죠.  keep the pot boiling 말 자체가 관용어처럼 쓰이게 되어서  숙어로 관심을 식지 않게 하다라는 뜻으로 쓰이죠. 냄비 모금 이후로 지금도 자주 쓰이는 문장이죠. 이후로 구세군은 냄비를 이용한 자선 활동을 꾸준히 하는 중이죠. 우리나라를 포함해 현재는 130여 개국에서 활동 중인 구세군.

 

 

구세군의 의미도 알고 소외된 이웃들에게 따뜻함을 전하면 어떨까?

 

강매의 추억이 있는 크리스마스 씰 모금도 있죠.

학창 시절 생각나게 하는 크리스마스 씰, 나중엔 편지가 되어서 돌아왔죠. 다들 씰 한번 씩 사 보셨을 듯

크리스마스 씰은 우표의 기능은 하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 다양한 추억이 깃든 크리스마스 씰, 

19세기 산업혁명 시기 전염병이 난무하던 때, 결핵 환자가 많았는데 아이들이 특히 취약했죠. 덴마크 코펜하겐의 한 우체국에서 우편물에 동전 한 닢짜리 씰을 붙여 보내는 문화를 만들어 볼까? 라고 아이디어를 냈고, 이 아이디어가 덴마크 국왕에게 전달되고 세계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이 탄생합니다. 

 

 

한국에서는 일제강점기에 공식적인 기념일은 아니었지만 크리스마스 문화가 소개되던 때, 선교사 셔우드 홀에 의해 한국 크리스마스 씰이 처음 제작되었죠. 그래서 지금까지도 크리스마스엔 씰을 볼수 있죠.

크리스마스가 기다려지는 이유는 공휴일때문이죠. 우리나라에서 크리스마스는 언제부터 공휴일이었을까?

아시아에서 크리스마스가 공휴일인 나라는 몇 개 나라뿐, 우리나라에 어떻게 크리스마스가 들어왔을까?

 

 

때는 19세기 대한제국 시절, 커피 애호가로 소문난 고종, 

 

 

서양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고 알려져 있는데, 당시 조선에 와 있던 선교사에게 크리스마스 문화를 듣게 된 고종!

궁궐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설치하기도 했죠. 이후 크리스마스가 공휴일이 된 시기는? 1945년 광복 직후입니다. 

미군정이 한국 정부의 기능을 수행했던 시기죠.

 

 

미군정 시기에 크리스마스를 공휴일로 지정, 미군정이 물러난 후 이승만 대통령이 1949년에 휴일 규정을 발표합니다. 크리스마스를 공휴일로 지정합니다. 우리나라 달력인 1952년 처음 크리스마스의 명칭은 기독탄신일! 

이승만 대통령이 기독교인이었던 이유가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추측, 지금도 기독탄신일이었다면 대중적인 이미지는 아니었을 듯하네요. 크리스마스가 공휴일이 된 후 생긴 불교 측의 불만으로 1975년, 석가탄신일도 법정 공휴일로 지정합니다. 그래서 석가탄신일과 크리스마스가 함게 공휴일인 몇 안 되는 나라죠. 사실 크리스마스 하면 영원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입니다. 

 

출처: 벌거벗은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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