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선녀들이 찾은 곳은 조선 9대 왕 성종이 안치되어있는 성종 대왕릉을 찾았습니다. 평지가 아닌 높은 언덕에 위치한 성종 대왕릉은 오랜 시간이 흘러 도심 한가운데 자리하게 된 역사적 장소죠. 원래는 가까이 못 들어가는 촬영 허락받고 가까이 들어갔네요.
아직 저도 한번도 못 가봐서 경복궁이랑 창덕궁도 가보고 싶더라고요. 저는 해외여행보다 요런 역사적 여행지나 우리나라 여행지가 너무너무 좋더라고요. 특히 역사 관련된 곳은 뭔가 뜻깊고 의미도 있고 조용해서 좋아요.
성종대왕릉성종 대왕릉 앞에는 왕의 곁을 지키고 있는 무인석과 문인석 있습니다. 성종 대왕릉에서 할 이야기는 연산군 그의 기이한 행동을 분석하기 위해 명쾌한 심리 분석으로 밝혀지는 숨겨진 연산군의 내면 이야기입니다.
연산군에 대한 이야기는 거슬러 올라가 부모의 이야기부터 시작해야죠. 연산군의 아버지인 성종은 3명의 왕비와 10명의 후궁이 있었는데 자녀가 총 29명이었다고 해요. 수많은 자녀 중 태어난 첫째 아들이 이융으로 바로 제10대 왕 연산군입니다. 연산군의 어머니는 폐비 윤 씨로 원래는 후궁이었는데 첫째 부인 공혜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여러 후궁 중에서 중전으로 낙점되어 중전이 되었죠. 그 이유는 성종이 총애하던 후궁 윤 씨였기 때문에 그리고 성종의 어머니인 인수대비가 후궁 윤 씨의 검소하고 겸손한 모습이 대비들 마음에 쏙 들었기 때문이라고 해요. 성종과 대비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중전이 된 윤 씨. 그리고 성종과 중전 윤씨 사이에서 태어난 아늘 이융인 연산군.
하지만 순조롭던 출발도 잠시 비극이 싹트기 시작하는데, 성종과 대비들의 총애를 받던 윤씨 한순간에 폐위될 위기에 처하고 마는데 과연 윤 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성종의 총애 속 후궁에서 중전까지 꿰찬 윤 씨는 아들 연산군까지 낳으며 꽃길이 예상되었죠. 하지만 중전윤씨가 몰래 비상과 방양서를 숨기다가 발각됨, 비상은 독약이고 방양서는 굿하는 방법을 담은 책입니다. 이 사건으로 중전 윤씨의 위치까지 위태위태해짐. 성종이 다른 후궁에게 사랑이 쏠리자 질투심이 폭발, 중전윤씨는 결국 비상과 방양서를 숨겨 두 후궁을 음해 했고 이 사건으로 성종과의 불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중전 윤씨는 결국 비상과 방양서를 숨겨 두 후궁을 음해 아들 연산군이 태어나자마자 비극의 서막이 오르게 됩니다.
큰 미움을 받게 된 윤 씨는 사실상 쫓겨나기 직전에 중전 윤 씨의 처벌을 신하들이 반대했죠. 그래서 중전 윤 씨를 빈으로 강등
생후 4개월 된 아들 연산군과 생이별하게 된 어머니 윤 씨 이렇게 된 이유는 중전 윤 씨의 돌변때문이죠. 후궁에 대한 질투심에 돌발행동도 서슴치 않았죠. 윤씨가 성종의 눈 밖에 나게 된 또 다른 결정적 이유는 변한 중전과 시어머니 인수대비와의 갈등때문입니다. 왕실의 이쁨 받던 후궁 윤씨가 중전윤씨가 되고 돌변하자 왕실이 술렁였죠. 고부갈등으로 관계회복이 불가하게 되었고 성종과 중전 윤씨의 관계도 멀어지게 되고 아들 연산군이 있음에도 별거를 선택했죠.
당시 연산군은 이제 막 100일 지난 갓난아기였어요. 어머니 윤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나 홀로 자란 아들 연산군. 가슴 아픈 어린 연산군의 가족사는 어찌 됐을지?
심리적으로 분석하면 이 정도면 관계가 회복하기 어렵다고, 자기 충족적 예언으로 인해 파국으로 치닫은거 같다고 하네요. 자기충족적 예언이란 자기가 예언하고 바라는 것을 현실에서 충복하게 되는 현상을 말해요. 윤씨를 향한 불신이 쌓인 성종, 말이 씨가 되듯 부정적 예언이 충족됨으로써 성종의 자기충족적 예언이 실현된 걸 까요?
서로 더 나은 행동이나 개선된 행동을 보여줘도 좋아질까 말까인데 두 사람은 소통이 불가했죠. 지금이라면 관계 회복을 위해서 좋은 방법이 떨어져 있는 거라고 해요. 하지만 조선시대 왕실에선 오해하기 딱 좋은 상황이죠. 거리두기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해결책이 되기도 하지만 왕실에서는 불가능하죠. 만약에 거리두기를 하면 호시탐탐 중전의 자리를 노릴 후궁들, 왕실이라는 특수 상황 속 거리두기는 쉽지 않겠죠. 하지만 오늘날도 정말 그게 안 되는 게 가족이고 부부예요. 서로를 향한 불신이 그대로 쌓여 파국으로 가기 쉬운 가족싸움 이처럼 비극을 맞은 어린 연산군의 가족사.
중전 윤 씨는 빈으로 강등되고 별궁에 격리돼 어린 연산군과 떨어져 지낸 어머니윤씨. 별거를 통보받은 윤씨는 성종과의 관계를 위한 어떤 행동을 했을까요? 성종과의 갈등이 폭발하게된 계기가 있는게, 별거 약 2년후 중전 윤씨의 생일날 보통 중전의 생일이면 성대한 잔치가 기본이에요. 그러나 성종이 생일잔치를 취소하라고 했고 옷감만 선물해주고 끝내버림. 영문을 모르고 윤씨는 서운함이 폭발했고 중전윤씨의 생일날 후궁의 처소를 찾아간 성종 그걸듣고 후궁의 처소로 간 윤씨
그 당시 기준으로 보면 이상행동이죠. 조선시대에는 절대로 하면 안 되는 만행인 거예요. 여기에 분노를 참지 못한 중전 윤 씨가 성종의 얼굴에 손톱자국을 냈다는 일화가 있죠. 중전 윤씨가 폐위된 결정적 사건일지도 몰라요. 조선중기 기묘록에 기록된 일화입니다. 이처럼 윤씨가 이상행동을 한 이유는 심리학적으로 보면 산후우울증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고 해요.
연산군을 낳고 난 후 포악한 성격으로 돌변했던 폐비 윤 씨, 경계선 성격 장애로 보이는 행동을 하기도 했죠. 분노조절 불가, 심한 집착은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면 산후우울증과 비슷합니다. 폐비 윤 씨가 돌변한 시점이 연산군을 낳은 직후입니다. 출산 후 이유도 모른 채 겪은 엄마들의 심리적 불안, 조선시대에도 산모를 위한 케어가 있었는데 바로 태교가 있었다는 것. 태교는 아이의 순산에 집중되어 있어 산모의 출산후 신체적 회복과 관련된 기록을 수두룩하지만 정신적 회복을 케어하는 기록은 없다고 해요.
산후 우울증 증상으로. 1 엄마가 아이에게 위협적인 행동을 하는지 2. 스스로 자해하는 행동을 하는지 3. 통제력을 상실했는지 산후 심리 불안으로 오는 증상들로 경각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한다고 해요. 산모가 산후 우울증을 겪지 않게 할 방법은 산모의 곁에서 공감해주며 같이 있어 주는 것, 혼자 있고 싶을 때 혼자 있게 해주고 누군가와 같이 있고 싶을때 같이 있어 주는 것. 성종과 윤 씨는 그렇지 못했고 결국 어긋나 버린 폐비 윤 씨의 마음. 산모인 윤씨의 마음을 알아줬더라면 우연이든 필연이든 악순환이 된 두 사람의 관계. 결국 회복이 안 된 상태로 비극을 맞은 게 아닐는지.. 상황은 점점 끝을 향해 달려가고 결국 중전에서 폐비가 된 윤 씨. 폐서인으로 강등되고 사가 유폐, 사사됨. 폐서인은 양반이나 왕비, 세자, 대군 등이 죄를 지어 신분과 지위를 잃고 강등되는 것을 말하고 사가 유폐는 사람을 일정한 곳에 가두어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
그리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인물, 연산군과 지독하게 얽힌 인연 승지 이세좌입니다.
성종은 이세좌를 보내며 폐비에게 사약을 내렸으며 1482년 8월 16일 폐비 윤 씨는 사사되었죠. 사사하다는 임금이 죄인에게 독약을 내려 스스로 죽게하는걸 말해요. 조선왕조 최초로 중전이 폐출되고 죽임까지 당한 사건입니다. 조선을 뒤흔든 폐비 윤씨 사사 사건. 이후 완고한 태도를 보인 성종은 폐비 윤 씨의 사후 예우에 대한 규정도 고치지 못하게 했죠.
홀로 남은 연산군은 어땠을까요?
<출처: MBC 선을넘는녀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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