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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한19, 405화 한국을 더 사랑한 대한 외국인 19. 1위 vs 18위

by 로토루아8 2024.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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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vs 18위 한글을 사랑했던 대한 외국인?!

우리나라 최초의 한영사전은 과연 누가 만들었을까?

영어가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전파되기 전 영어는 꼬부라진 글씨와 말소리였을 뿐이었죠. 영어에 대한 개념이 거의 전무했던 그때, 

 

 

미국 선교사 언더우드와 함께, 우리말을 영어로 번역해 처음으로 사전화한 사람입니다. 

 

 

1888년, 한국을 찾았던 제임스 게일, 생의 절반이 넘는 40여 년을 한국에서 생활했고, 한국명 기일이라는 대한 외국인으로서 이 땅에 거주를 했죠. 교인 이창직에게 한국어를 배운 게일. 그리곤 누구나 배우기 쉬운 한글의 우수성에 감탄을 했죠. 

 

 

 

언더우드와 함께 열정적으로 한글을 연구한 끝에,  1980년 최초의 한영사전인 한영자전을 편찬했습니다. 

 

 

1897년 기존 한영자전보다 4배나 더 많은, 약 3만 5천 개의 어휘를 수록한 한영사전을 발간합니다. 세상에 없던 것이기에 더더욱 존경스러운 일. 뭐든 처음이 어려운 거 잖아요. 예를 들어 소설 번역의 경우 원래 있는 스토리를 옮기면 되지만, 특히 어학 쪽으로 뛰어났던 게일.

 

우리 문학과 한국 민담집인 구비 문학 작품집 등을 영문판으로 발간하는 등 활약했죠. 문화 강국 한국의 저변에는 지난 날, 게일의 무수한 노력들도  있었습니다. 우리 역사에 절대 없어서는 안 됐던 한국학 연구의 선구자인 게일.

한국인들과 부대껴 생활하며 배운 한국의 언어와 관습. 한국을 떠나기전 제임스 게일이 남겼던 말!!

 

 

 

1위 vs 18위 제주, 귤의 섬 그 시작.

과거 가난했던 제주도.

 

 

귤의 섬이 된 제주도, 과거에는 제주도의 재래동 감귤은 왕의 진상품이었습니다. 그런데 수확량이 풍족하지 않았어요. 제주도가 귤의 대명사가 된 건 누군가의 노력 때문입니다. 

 

 

1898년 조선을 방문한 프랑스 선교사 에밀 타케, 그는 한국의 구상나무를 크리스마스트리로 전 세계에 알렸죠.

해외 선교사 포리 신부를 통해 온주밀감 14그루를 조선에 반입, 

 

 

에밀 신부가 들여온 온주밀감이 현재의 귤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무럭무럭 자란 온주밀감. 에밀 신부는 온주밀감을 서귀포 농민에게도 분양을 했고, 이후 밀감 과수원들과 함께 제주도 밀감 산업을 발전시킴.  귤= 제주도라는 공식이 확산되었죠.

 

에밀 신부의 온주밀감이 제주도 생계를 책임진 것. 

 

 

에밀 신부는 제주도에서만 7천여 점 식물을 채집했고, 한국 식물분류학과 제주도 식물학 연구에 이바지 했다고 해요. 에밀 타케의 이름을 딴 학명안 타게도 다수. 

 

 

섬잔대, 뽕잎피나무, 한라부추등 토종 식물도 수십 가지, 강제로 시키지 않았음에도 손수 제주도에 귤을 전파하고 한국 식물들을 찾은 이유는 제주도민들을 향한 사랑이라고 합니다. 제주도를 위해 직접 땅을 사 논농사를 가르쳤던 에밀 신부.

식물 채집 보상금도 농민들을 위해 사용, 아무 이득도 없는 고행의 길. 이역만리 타국의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흙을 밟고 뿌린 에밀 신부. 

 

제주도 사람들을 향한 진심 어린 사랑이 있어 가능한거죠. 귤의 섬 제주도를 있게 한 에밀 신부. 그가 뿌린 씨앗들은 지금도 제주도를 향긋하게 물들이고 있습니다. 

 

 

1위는??

애국심을 넘어서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사는 인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눈동자 색깔이 다르거나 언어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인류애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1위는 한글을 사랑했던 대한 외국인?!

한국에서 한국어를 쓰는 것을 비유하자면 한강에 대교를 만들어 전국 모든 사람이 편하게 다니는 다리를 짓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한영사전을 만드는 것은 외국인들은 한국어를 쓸 수 있게 해 큰 역할을 해냈다고 생각해 1위로 선정했다고 합니다. 

 

출처: 프리한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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