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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어른, 추상미, 누구에게나 스토리는 있다.

by 로토루아8 2018.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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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출, 각본, 출연, 편집까지 1인 5역인 영화배우 겸 영화감독인 추상미

준비기간만 4년 67년에 걸친 감동실화를 전하로 왔다고함

한국전쟁 고아들의 비밀 실화 최초 공개

개봉전부터 연일 화제되고 있는 첫 장편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


영화의 중심이 되는 스토리.. 모든 스토리는 안락한세계에서 갈등이 생기면 극복을하며 새로운 세계가 나타난다고

추상미 개인으로서도 비슷한 과정을 경험했다고하네요.

연출보다 배우로 먼저 데뷔했는데 아버지의 영향때문이라고

아버지가 제작 연기한 모노드라마 빨간 피터의 고백

인간의 말과 습성을 따라하기 시작하는 침팬지 행동은 물론 언어까지 습득

이 연극의 하이라이트는 학술원 회원들 앞에서 인간화 과정을 보고하는 장면..

나는 육체의 자유를 찾기위해서 정신의 감옥에 갇혀버렸습니다.

인간의 습성과 문화를 배웠지만 인간이 정해 놓은 규칙이 나를 가두는 감옥이 되었습니다.

1970년대 행해진 유신 체제는


시위대신 극장으로~

좋은 예술작품하나가 분노를 멈추고 성찰하게 한다.

끝없이 이어지던 관객 4개월만에 관객 6만명이 동원되었고

하루 4회공연에 지방공연까지 연극공연하는 동안에 무대에서 먹은 바나나가 700여개라고함

관객이 준 손수건은 300장

추송웅은 1960~1980년대 활발히 활동을 했고 빨간 피터의 고백은 교과서 같은 작품이라고하네요.

당시는 현장 매표 시스템이라 오랜 시간 줄 서야 관람이 가능했음

신화, 그리고 전설로 통했던.. 故 추송웅의 빨간피터의 고백

오래 각인되었던 故 추송웅 선생의 모습

한국 연극사에 독보적인 발자국을 남긴 아버지

많이 부담스러웠던게 사실이라고 때로는 보호막이었지만 한편으론 부담됐던 존재

연기자로 데뷔후

행동을 바르게 항상 깍듯하게! 모든게 서툴렀던 신인 시절에 못하면 못하는대로

잘하면 잘하는대로 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던 아버지

배운 추상미가 아닌 누군가의 딸이라는 시선 배우로서 피할수 없었던 부담감이 있었다고.

연극으로 데뷔한 추상미는 이후 영화와 드라마까지 접수하게됨

계속 그런 역할만 하게되니까 소모품 같았던 배우생활에 ... 배우라면 한번쯤 겪엇을 고민이죠

어느순간 회의감이 밀려왔고 나랑 배우가 잘 맞는걸까?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친 상태였고 2008년도 연기를 중단하게됐다고..

어느날 찾아온 소중한 아이는 유산되었고 이로인한 충격으로 몰두할 무언가가 필요했다고

첫번재 단편 영화인 분장실


이후 임신으로 드디어 엄마가 됨. 그런데 이번에는 산후우울증으로 고생을 하게되고

당시의 심리를 반영한 두번째 단편인 영향 아래의 여자를 만들게 됩니다.

보험설계사인 주인공은 승진을 위해 오늘 안에 계약 3건을 마쳐야합니다.

당시 겪은 극심한 불안을 영화로 표현

혹독한 시련을 거치고 엄마가 된 추상미감독

엄마가 되며 겪는 육체적 혹은 정신적인 변화 때로는 동시에 겪기도한다고

아이와의 시간이 물론 좋지만 육아가 어렵고 힘든건 사실이라고

배우로서 나 자신은 사라지는 느낌

늘 반복되는 불안과 의문으로 

아이에 대한 애착, 아버지의 이른 부재 탓에 내 아이 또한 잃게 될까 걱정되기도한다고

매일 악몽을 꿀 정도였다고 그래서 다른 아이들에게도 향하는 시선

사건사고 소식에 심장이 철렁하기도하고 아이에 대한 사랑이 세상을 향한 모성으로 되었다고해요.

그시점에 접한 북한 꽃제비 소녀 영상에서 일정한 거주지 없이 떠도는 북한의 아이들을 지칭하는게 꽃제비인데

극도의 경제적 어려움을 겪은 북한은

추상미의 눈에 밟힌 꽃제비 아이들

당장 그들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햇는데 최악의 식량난으로 약 300만명이 아사했을걸로 추정된다고

고난의 행군 시기 사망자 수는 현재도 엇갈리는 상황

만약 다른나라였다면? 옆나라에 닫친 기근이면 물심양면으로 지원했을거라고

하지만 분단 국가인 우리는 힘든 상황이고 처음으로 분단의 현실과 비극을 느꼈다고


운명처럼 다가온 북한 전쟁고아에 대한 실화

한국 전쟁 당시 발생한 전쟁고아 수는 얼마일까요?

남북 합산 약 10만명으로 추정되욤 남한의 전쟁고아는 미국 및 서유럽으로 입양을 됐는데

북한 전쟁고아들은 동유럽으로 감 잘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사실이죠

폴라드로 보내진 약 1500명의 고아들

폴라드의 한 언론인이 발견한 북한 소녀 김귀덕의 묘지

기자의 섬세한 촉이 발동되면서 숨겨진 사연이 있을 거 같다고  3년동안 심층 취재를 함

마침내 북한 전쟁고아에 대한 사연을 발견하게 되어 폴란드 공영방송에서 다큐멘터리로 방영을 하게됨

실화소설로도 출판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미출판됨

후배가 일하는 출판사를 방문했다가 우연한 기회에 자료를 입수하게됨

출판 여부를 두고 고민하고 있는데

거리로 내몰린 아이들을 보며 북한 문제에 관심이 생겼고 분단의 현실에 분개하던 상황중에

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수많은 고아

굶주린 채 거리를 방황 중인 꽃제비 아이들

작품으로 극복해야겠다!

한국전쟁 고아 소재로 극영화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했고 1,2차 세계대전 배경까지

공부만 꼬박 6개월이 걸렸다고 어느날 문득 든 생각이 등장인물은 대부분 북한 아이들인데

우리나라 배우가 연기할 경우 아무래도 리얼리티가 부족할거같아서

물룬 연기를 너무 잘하지만 북한 아이들만의 느낌을 위해 오디션을 개최

탈북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결과 감초조연역할이자 가무에 능하고 발랄한 역할이 필요했다고

주인공으로 이송을 발탁함

3개월동안 자료수집을 하다가 든 생각이 직접 역사의 현장을 찾아

폴란드 생존 교사를 만나야겟다.

폴란드행 결심 후 알게된 사실.. 연세가 많으신거에요.

300명중 생존 교사는 10명남짓이고 원장님 또한 91세임 게다가 지병까지 앓고 있는 상태임

생전모습과 육성을 기록으로 남길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극영화는 미루고 다큐멘터리로 방향을 수정


탈북민의 상처를 나누고 소통하고 싶어 이송과 동행을 했다고

여정중 가장 크게 부딪친 건 문화적 차이..

남한 사람들은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는 편이라 예의상 무례하지 않게 에둘러서 표현하잖아요.

겉과 속마음이 다르니 가식으로 비춰질수도있는데 반면 북한 사람들은?

적나라하게 얘기한다고 좋고 싫음이 분명하고 서로 다른 표현때문에 갈등과 오해가 생겼다고

한달동안 함께 지내면서 밤마다 잠들기 전에 탈북과정에서 있었던

상처를 꺼내기 시작한 이송

처음알게된 탈북민의 아픔에 공감하게됐고 마음을 터놓고 얘기하면서 가까워진 두 사람

훗날 통일이 된다면 반드시 겪게 될일이라고

차이를 어떻게 극복하고  무엇으로 하나가 될수 있을까? 작은 상처부터 큰 상처까지 서로 공감한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남북한이 이어질 거라는 믿음

이것이 다큐멘터리의 첫시작이에요.

약 300명은 도심근교 시비데르로 이송~

북한 정권이 동유럽 동맹국가에 전쟁고아 위탁을 요청해 전쟁고아중 일부는 체제 선전도구로 이용되고

다큐멘터리에서 그린 대상은 따로 있어요.

러시아로 갔던 북안 고아 1270명은 2년간 방치된 터라 영양실조와 건강악화까지 나타남

교사 보모 의료인까지 비밀유지서약을 하고 폴란드 남서푸 시골마을인 프와코비체로 이송됩니다.

건강검진을 위해 흉부 X-ray를 촬영했는데 폐에서 수많은 기생충이 발견됨..ㅠㅠ

한국전쟁때 북한에 파견된 폴란드 의료진은 의사 연구자로부터 검증받아

한반도 지도위에 기생충 분포도를 표시햇는데

그 결과 기생충의 서식지가 정확히 반으로 나눠진 것.

그렇습니다.

폴란드 취재 중 알게된 사실이 당시 북한군이 남침하면서 한반도 전선이 수시로 이동을 했는데

이산가족으로 넘쳐난 전쟁고아

남한 전쟁고아까지 포함된 것.

폴란드에서 8년을 지낸후 전원 귀환 명령이 떨어졌고 남한 전쟁고아도 북한으로 이송됨

며칠에 걸쳐 아이들을 실은 기차가 도착했고 기차안에 1200명의 아이들이 있었다고

머리에는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중국에서 나이 많은 사람이 쓰는 모자 같은거였다고


언어도 모습도 다른 이방인

폴란드 교사를 처음본 아이들의 반응은?

새로운 환경이 낯설고 두려웠을 아이들.. 북한 고아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처음본 서양인은 적군이었던 미국인이었을거에요.

참혹한 광경을 목격했기 때문에 전쟁 트라우마로 불안한 심리상태였을거고

생존교사의 증언에 따르면 멀쩡한 침대를 놔두고 밑으로 들어가 벌벌떨었다고..

왜그랫을까요? 폭탄이 무서워서... 아이들에게 깊숙이 남아있던 전쟁 후유증

악몽에 시달려 잠꼬대하면 보모가 달래주는 일이 부지기수였다고

부모가 되어 사랑으로 품어준 교사들 취재도중 놀랐던 사실이

비극의 상처를 마주하고 극복할 수 있는 교육까지 해줬다고해요.

폴란드판 셰익스피어

잃어버린 조국의 그리움을 담은 시극인 판 타데우시

남북의 역사와 비슷한 폴란드는 세번의 분단을 경험하고 주변 강대국의 침략을 받았어요

같은 아픔과 상처를 가진 나라로 19세기 폴란드가 분단된 상황에서 쓴 작품임

대사암기+ 등장인물 선정+ 연극

우리나라도 분단국가인데.. 연극을 통해 상황을 인식하게 해주고

아픔을 표현하며 자연스레 상처를 회복하게 됐다고

쇼팽은 폴란드 혁명 실패 후 프랑스로 망명해 조국 잃은 설움을 음악으로 승화시켰잖아요.

예술과 운동 위주의 교육을 진행함

아이들의 심신이 회복될수 있도록 정상을 다한 폴란드 교사들

안전함을 느낀 아이들은 즐거운 생활의 연속이었고 움츠러든 동심도 활짝 굳게 닫혀있던 마음을 열면서

선생님들을 엄마아빠처럼 인식하게되었고 북한 아이들을 가르치던 교사중 한사람이 바로

폴란드 전 대통령 브로니스와프 코모로프스키의 어머니라고하네요.

2013년 대한민국 방문 당시에 북한 전쟁고아들이 폴란드로 왔다는 사실을 최초로 증언하심

당시 대여섯살이었던 폴란드의 전대통령은

북한 아이들과 함께 연극도 했다고 

서로의 다름이 싫은게 아니라 신기하고 즐거웠던 아이들..

한국말은 물론 아이들 이름까지 생생하게 기억하심

70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 아이들과의 일을 추억하며 눈물을 흘리던 교사들

언어도 통하지 않았었는데 마치 헤어진 자식처럼 그리워할까?

사랑이란 감정이나 단어가 낯설어진 요즘 국경과 세대를 초월한 인류애가 있구나..


가족이상의 관계였던 북한 아이들과 폴란드교사들

아이들을 인솔하던 북한 교사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고

그때 북한에서는 천리마운동이라고해서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천리마와 같은 마음가짐을 갖자는 나라의 경제 발전을 이루기 위한 노동력 동원 운동이에요.

전쟁으로 폐허가 된 북한을 복구하는 계획진행

그러나 여의치 않았던 소련 및 사회주의 국가들의 지원으로 국민들의 노동력에 의존해야했던 상황

게다가 국제 정세도 불안하고 정치적으로 혼란했던 동유럽

국내외정세로인한 김일성의 북송명령이  있게되고

자신의 상처를 어루만져준 새로운 가족이 탄생햇지만

아이들에겐 두번 부모를 잃은거라고

혹시 아프면 남을수도 있다는 생각에 눈위에 눕거나 몸에 찬물을 뿌리기까지했다고..ㅠㅠ

그렇게 해서라도 헤어지고 싶지 않았던 아이들

작별은 아이들에겐 엄청난 공포죠

13세 소녀 김귀덕을 제외한 나머지 아이들은 전원 북송됨

갑작스러운 작별은 폴란드 교사들에게도 힘든일이죠

북한 곳곳에서 온 편지가 잇는데

선생님을 향한 그리움이 가득함

하인이 돼도 좋으니 저를 데려가 주세요. 그리고 2년후 갑자기 끊긴 소식.. 더이상 편지는 오지 않았다고해요.

살아있다면 노인이 되었을 나이 하지만 폴란드 교사들에겐 여전히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들이라고

그러나 생사조차 모르는 현실..

한반도에 평화로운 통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사랑한다고..

그아이들을 만나면 사랑한다고 전해주세요.

인생을 돌아봤을때 가장 가치 있던 시간은 북한 고아들을 돌보았던 8년입니다.

난생처음보는 동양 아이들 머나먼 타국의 아이들이 아닌 자신들의 유년 시절을 마주한것같은 감정

대부분 전쟁고아 출신인 폴란드 교사들


시쳇더미를 밟고 등교해야했던 처참한 유년 시절

자신과 닮은 아이들을 만나고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며 사랑하는 시간을 통해

상처가 많았던 과거의 기억까지 함께 치유된 것은 아닐까..

지금우리에게 필요한 사랑의 모습일지도...

대부분 북한에서 엘리트층을 형성했고 폴란드 대사로 영사로 교수로 금의 환향해 돌아온 아이들

전쟁고아들의 북송 이후를 담은 후속 방송 제의

실제 생존자중 한명이 탈북민 하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남

그리고 폴란드 이민을 준비 중이었던... 가족이 있는 곳뿐만 아니라 나를 사랑해준 사람의 기억이 있는 곳 또한 고향이 아니냐고

2017년은 대립과 갈등의 해였잖아요.

소재가 소재인만큼 시기에 민감함

북한에 쏟아지는 부정적인 시선으로 모든것이 조심스러운 상황

설상가상 지원금도 문제엿다고 심지어 아들도 미운 7살이라고

포기를 결심하기도 했다고

7%완성하고 강제 버퍼링됨 하지만 급속도로 훈훈해진 2018년 남과 북

대립에서 대화의 길로 급선회를 했고 대한민국 국민중 가장 기뻤다고

오랜 후반작업 기간 나홀로 편집중이었는데 보통 영화는 협업의 형태로

남편에게 100번이상 강제 모니터링을 시켰다고..

답답한 마음에 아들까지 소환 어른 흉내 좋아하는 아들의 조언이


나름의 이유를 대며 열심히 설명해주는데 묘하게 설득당했다고

아들의 도움으로 편집이 수월해짐

99% 작업 완료한 어느날 배급사가 확정되고 개봉일이 확정됨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술술풀리고

1% 마무리가 관건이었음

마우스가 허공으로 획 날아갔고 책상위에 있던 하드디스크가ㅠㅠ

개봉일 앞두고 청천벽력을 들음

복구가능여부 결과는 3일후에... 어처구니없는 일이 터지면 잠이 와요

드디어 복구 결과 나오는 날

빛을 보게 된 폴란드로 간 아이들

처음 작품을 세상에 알리는 자리인데 영화제 GV행사는 관객과의 대화를 준비하던중에

도저히 외출이 불가한 날씨 모든 일정이 전면 취소되고 당일 회차 전석이 매진

많은 분들이 기다려준 작품이지만 한두명은 보러오지 않을까?

직접가서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하고픈 마음에

갔더니 눈앞에 무려 150명이 와있었다고..


직접 느낀 관객들의 소중함 

영화의 완성은 관객임을 깨달았던 순간임

뜻하지 않게 많은 것을 배웠던 작품 산후 우울증을 겪으면서 내 아이에게만 집중했던 과거

영화를 시작하며 변화된 삶의 태도

모성으로 품은 폴란드 교사들

상처로 하나가 된 이들이 진심으로 나눈 교감

우리가 겪는 개인의 상처들 역시 버려지고 지워져야 하는 것이 아닌

누군가를 이해하고 공감하게 하는 힘이에요.

불완전한 모성으로 시작된 여정 덕분에 세상에 관심이 생겼고 역사속 아이들의 상처까지 이해할수 있었습니다.

타인의 상처에 공감하며 사회의 아픔까지 어루만져 줄 수 있는 따뜻한 세상이 여러분에게도 오길 바랍니다.


<출처: otvN 어쩌다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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