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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한국사, 폭군을 홀린 기생, 장녹수는 어떻게 연산군을 치마폭에 넣었나.

by 로토루아8 2023.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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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이 물러가고 선선한 가을이 다가오는 절기, 처서.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재밌는 속담이 있습니다. SNS를 통해 알려진 신조어인 처서매직, 조선을 대표하는 악녀로 손꼽히는 여인이 장녹수죠. 연산군의 후궁이었던 장녹수.

 

 

폭군 연산군을 쥐락펴락하고 원하는 모든 것을 손에 넣기까지한 기생 장녹수는 어떻게 연산군을 치마폭에 넣었을까?

조선의 팜므파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장녹수의 삶을 벗겨 보겠습니다. 

 

장녹수는 누구인가?

1502년 연산군 8년. 조선팔도 미녀를 색출해 궁궐로 불러들인 연산군은 불러들인 여인들을 기생 삼아 음주, 가무를 즐기려던 것이었는데 연산군은 가무 기생들에게 운평이란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운평 중에서 뛰어난 이들만 선별한게 흥청!

 

 

운평으로 뽀ㅃ히는 과정없이 바로 흥청이 된 여인이 바로 기생 장녹수입니다. 어떻게 연산군의 눈에 띄었을까?

 

 

자신이 쓴 시를 모아 시집을 내고 처용무에 능했던 연산군, 자기처럼 예술적 기질이 뛰어난 장녹수에게 끌렸던 것.

연산군이 장녹수에게 반한 또 다른 이유는?

 

 

당시 26세였던 연산군보다 연상이었던 장녹수, 장녹수가 기생이 된 사연은 무엇일까?

 

 

장녹수의 아버지 장한필은 충청도 문의현에서 사또직을 지낸 양반입니다. 양반 가문의 딸로 장녹수의 삶은 과연 평온했을까?

 

 

제안대군은 조선 제 8대왕, 예종의 둘째 아들이에요. 가비는 노비에요. 양반 가문의 딸에서 노비가 된 이유는? 장녹수 친언니의 남편이 노비에요. 이 사례로 볼 때 장녹수의 어머니가 관비를 지낸 천민 출신으로 추정되는데 당시 조선은 어머니의 신분을 따라가게 돼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천민이기 때문에 장녹수도 천민 신분인데 제안대군의 가비가 되기 전 더욱 처참했던 천민 장녹수의 삶, 

 

 

찢어질 듯한 가난 때문에 몸까지 팔아가며 살아야 했던 것, 장녹수의 또 다른 충격적 과거는?

 

 

먹고살기 위해서 여러 번의 혼인은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이었던 거죠. 결국 제안대군의 남자 노비와 혼인을 했고 사노비가 된 장녹수. 아들까지 낳으면서 점점 더 어려워진 생계, 살아남기 위해 기생의 길을 선택한 것. 사노비인 동시에 기생의 삶을 살아야 했던 장녹수.

 

장안에 자자하게 퍼진 장녹수의 실력, 소문을 듣고 연산군도 찾아간 걸까? 제안대군이 권세도 있고 부유한 왕족이다 보니 제안대군의 연회에서 처음 만나 장녹수에게 빠진 연산군. 왕의 선택을 받아 흥청이 되어 궁궐에 들어가게 된 장녹수. 천민 출신의 고통스러운 삶을 뒤바꿀 절호의 기회.

 

 

궁에 들어온 그해 장녹수의 인생이 바뀔 엄청난 일이 벌어진다?

 

 

장녹수가 입궁한 그 해! 종 4품 숙원에 정식 책봉된 겁니다. 

무려 연산군의 후궁이 된 장녹수. 기생 출신이 후궁이 될 수 있었나요? 불가능한 일이죠. 유교의 나라 조선에선 있을 수 없는 전무후무한 사례를 남긴 장녹수. 단지 예술적 재능이 있다는 이유로 장녹수를 후공으로 삼았을까?

 

 

연산군을 사로잡은 장녹수만의 특별한 행동이 있었습니다. 

연산군 앞에서 온갖 애교와 아양을 떨었던 장녹수, 연산군을 사로잡은 장녹수의 결정적 무기가 또 있다?

 

 

연산군을 대하는 장녹수의 행동이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기록에 남아 있다는 건 당시 모두가 알고 있다는 건데, 연산군이 장녹수의 무례한 행동을 다 받아준 이유는?

당시 연산군의 심리 상태가 중요한 거 같다고, 연산군은 애정결핍이 심한 상황이었어요. 어머니의 얼굴도 모르고 자신을 아들처럼 편하게 대하는 장녹수에게 어머니의 모습을 보지 않았을까?

 

 

연산군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피어나는 소식이 전해지다? 장녹수가 입궁한 바로 그해 왕의 아이를 잉태한 장녹수.

 

 

장녹수가 무사히 딸을 출산하면서 더욱 커진 연산군의 총애. 장녹수를 향한 총애가 극에 달한 1504년 3월.

조선을 발칵 뒤집은 연산군의 어명은?

 

 

입궁 1년 만에 종 3품 숙용으로 승진한 장녹수, 주변 집들을 허물고 녹수의 집을 넓히라는 어명. 연산군의 무리한 명령에 반기를 든 조정의 신료들.

 

 

당연히 예상되는 신료들의 반발, 과연 연산군의 반응은?

 

 

능상이란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업신여기는거에요.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은 조정 신료들의 반대 의견.

 

 

연산군의 총애로 자신의 재산을 엄청난 규모로 불려 나간 장녹수. 그런데 여기서 끝나지 않은 연산군의 파격적 혜택.

장녹수를 위해 누군가에게 관직을 하사합니다. 

 

 

고직은 동평관의 창고 관리자입니다. 장녹수 딸을 돌봐준 유모 아들의 신분은 노비에요. 심지어 평생 고용을 보장.

 

 

이 말을 들은 연산군은 눈 하나 꿈쩎하지 않습니다. 장녹수에게 너무 빠져 신료들의 소리를 듣지 않은 연산군. 또다시 연산군의 파격 혜택이 이어집니다. 

 

 

제사를 위해 내린 향과 축문을 함경도에 전달하는 임시 관직. 노비 신분이었을 장녹수의 형부. 장녹수 덕에 노비 출신임에도 관직을 받은 장녹수의 형부.

궁궐 내 자신의세력이 필요했던 장녹수는  온갖 값비싼 물건들이 오갔던 동평관, 게다가 자신의 세력은 물론 재물까지 얻기 위한 장녹수의 계략. 연산군의 총애를 이용해 서서히 자신의 이권을 챙기기 시작한 장녹수.

 

조정 대신들을 경악하게 만든 장녹수의 충격적인 행동은? 나라의 선박을 이용해 쌀을 무역하기 시작했다?! 

세금으로 올라온 쌀을 평안도에 판뒤 얻은 특산품을 다시 판매해 재산을 불린 장녹수. 

 

 

무려 7000석.

장녹수의 선을 넘는 행동에도 고개만 저어야 했던 신료들.  1504년 3월 20일 장녹수가 입궁한 지 3년째 되던 해 궁궐에 불어닥친 피바람?

 

 

어머니 폐비 윤씨가 사사된 사실을 알고 윤씨 죽음과 관련된 사람들을 숙청한 연산군

갑자사화 이후 시작된 연산군의 공포정치, 

 

 

더이상 연산군에게 간언할 수 없게 된 조정 신료들. 갑자사화 3개월 후 한양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사건은?

 

 

벽서의 내용은 연산군에 대한 비판이고 왕실의 비밀 이야기로 추정되는데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벽서가 붙어 있던 집의 정체는? 바로 장녹수의 집이에요.

장녹수도 벽서 사건에 연루되어 처벌받을 수 있는 상황, 얼마 후 밝혀진 벽서 사건의 범인은?

 

 

 

질투심에 장녹수를 해치려고 벽서를 붙였다는 것.

 

 

두 궁녀의 부모의 형제들의 목숨까지 빼앗아 갑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한가지 사실은? 범인으로 지목된 궁녀들이 사건 두 달 전 유배를 갔어요. 장녹수를 음해할 수 없었던 두 궁녀를 연산군은 왜 범인이라 확신했을까?

 

 

그렇게 죄 없는 두 궁녀를 범인으로 지목한 장녹수. 연산군의 총애를 빼앗기면 자신이 쌓아온 권력을 잃게 되는 상황.

 

 

그렇다면 벽서를 붙인 것도 장녹수가 아닐까요? 꾸몄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장녹수의 말만 듣고 범인을 확신한 연산군.

연산군을 조종할 수 있다는 확신에 과감하게 벽서를 붙였을 장녹수.

 

2편 보러가기

 

 

출처: 벌거벗은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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