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침략과 수탈...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
잊지 말아야 할 일본의 만행 19
뼈아픈 역사를 반추해보는 특종... 이런거 너무 좋아요..ㅠㅠ 제가 모르고 있던 내용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학교에서도 역사수업때 근현대사가 더 비중이 높아지면 좋겟어요.
조선침략, 태평양 전쟁등 수많은 인명을 살상한 일본.. 우리가 결코 잊어서도.. 더이상 감춰져서도 안됩니다.
3.1운동 100주년 기념 전 세계에 저지른 일본의 만행을 파헤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란 없습니다.
우리가 역사를 잊는다면 일본의 족쇄를 푸는 격이에요. 가슴아픈 역사의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해보겠습니다.
대만여행의 필수코스인 진과스에는
이곳엔 황금박물관도 있죠.
과거 다수의 금맥이 발견되었는데 찬란한 황금의 도시로 불린 곳이기도해요.
그런데!! 황금의 도시 이면에 서린 전쟁 포로의 피와 땀!!
청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50년간 대만을 지배했는데 1940년대, 진과스에서 우연히 금맥을 발견한 일본군은
그 뒤 금에 혈안이 되어 진과스 곳곳을 파헤친 일본은 그런데 광산에 투입할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4300여명의 전쟁 포로들을 광산 노동에 투입했고 그때부터 시작된 가혹한 노동...ㅠㅠ
전쟁포로들은 광산 입구의 신사에서 강제 참배를 시작으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지하 1.6km 로 내려가
매일 12시간 이상 노동에 끼니는.. 주먹밥이 전부였다고.
게다가 열악한 작업환경으로 각종 질병에도 노출되고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은 패하게 되었고 그제야 끝이 난 지옥..
1985년 폐광되었고 녹슨 기계들만 남아 점점 잊혀간 진과스..
사실 유명한 관광지로만 알고 있었는데 가슴 아픈 역사도 꼭 기억하고 방문해야겠어요.
1945년 경성역 창고 구석에서 발견된 종이뭉치!!
그것은 조선말 큰사전 원고에요.
민족정신의 근간인 말과 글을 빼앗기 시작하면서 대부분의 한글 신문과 잡지를 폐간함.
오직 일본어 사용을 강요하고
한글학자인 주시경 선생과 그의 제자들은 1929년 10월 조선어 사전 편찬회를 구성
이때부터 전국에서 우리말을 모으는 말모이 작전을 시작함
예를 들어 단어 가위 하나에도 지방 사투리가 다양한데 전국에서 일상 언어를 적어 조선어 학회에 전달을 함
초, 중학생들도 말모이 작전에 참여했고 말도 모이고 뜻도 모이고
걸리면 문제가 될수 있다는 위험성을 안고 한거잖아요. 일본 경찰들의 감시를 피해 3년의 노력 끝에
약 6111개의 표준어를 확정
하지만 그 영광이 빛을 보기도 전에 사전 편찬 작업 현장이 일본경찰에게 발각되었고.
치안유지법제조 내란죄를 적용해 결국 모진 고문을 당한 조선어 학회 회원들.
피와 땀이 서린 사전 원고는 압수조치 당했고 그러나 그 어떤 탄압으로도 말살하지 못한 민족정신.
광복이후 기적처럼 경성역에서 발견된 원고
마침내 총 6권의 조선말 큰사전이 완성됨.
무려 46년만에 완성된 최초의 우리말 대사전.
목숨걸고 노력해주신 분들이 없었다면 우리나라의 사전 편찬이 훨씬 더 늦어졌겠죠.
우리말 사전 편찬의 주역인 이극로 선생이 남긴말.
말은 민족의 정신이요. 글은 민족의 생명이니 정신과 생명이 있으면 그 민족은 영원불멸할 것.
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은 이뿐만이 아니었죠.
1939년 조선 민사령을 개정한 조선총독부는 일본식 이름을 사용하는 창씨개명을 강요함.
신청 첫날 창씨개명 신청자가 50명도 채 되지 않자 이에 분노한 조선 총독부의 모진 협박과 매질뿐 아니라 식량 배급 대상에서 제외하고
직장에서 해고조치함.
자녀들의 입학 자격까지 박탈함으로써, 창씨개명을 안 할수 없게 만들었음.
한편 창씨개명 강요에 항거한 선조들도 있었으니.. 전라남도 곡성군에 살던 한 남성은
나라가 망할때 죽지 못하고 30년간 치욕을 당했는데... 이제 혈족의 성까지 빼앗으려 한다고
조선총독부 미나미 총독에게 항의서를 보낸 뒤 자결했다고해요.
그뿐만 아니라 어쩔수 없이 창씨개명을 한 사람들은
일제를 능욕하는 이름으로 개명을 신청함.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은 태평양 전진기지를 공략에 나선 일본은 1941년 필리핀을 점령하자
1942년 4월 필리핀 바탄 반도에서 항복한 필리핀군과 미군
그리고 7만여명의 포로들을 수용소로 옮길 차량이 부족해지자
일명 바탄 죽음의 행진.
프로들이 약 100km를 걷는 동안 물조차 제공하지 않은 일본군
행군에 낙오된 포로들은 처참히 살해되기도했다고해요..ㅠㅠ
인간으로 취급받지 못한 포로들... 행군을 시작한 포로는 7만여명이지만 수용소에 도착한 이들은 5만 4천여명에 불과함
바탄행진은 미군 포로 생존자들이 일본군의 잔혹함을 증언
마치 우리 모두를 죽이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고..
당시 피해자였던 생존 미군을 일본으로 초청해
2015년 미국을 방문한 일본 아베 총리는
전범국의 이미지 세탁이라며 맹비난을 받은 일본.
미국에만 사과했네요.!
그들의 선택적인 사과에 과연 진심이 있었을까요...?
일제강점기 전 1907년에 일어난 뼈아픈 역사
각국의 전시품을 구경하기 위해 모인 수천명의 관람객.
당시 관람객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구경거리가 있는데 조선에서 온 동물..
일본이 전시한 동물의 충격적인 정체...!
일본인은 심부름만 하면 돈 벌게 해준다면서 터키, 아프리카, 인도등 각국의 사람들과 함께 전시를 함.
이들은.. 우리에 갇힌 동물취급을 받으면서 매일 수천명에게 치욕을 겪어야만 했는데..
심지어 조롱하는 기사까지 낸 일본의 모 일간지..!!ㅠㅠ
아..진짜 막 화나더라고요.
천인공노할 인간 전시 만행이 일어나게 된 이유는 1903년 오사카 내국권업박람회 전시를 자문한 인류학자인 츠보이쇼고로는
사회진화론 사상을 내세워 야만적인 전시를 기획함.
이를 계기로 1907년 또다시 야만적인 인간전시가 연출되었는데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은 일본의 끔찍한 만행..
율곡로는 종로구 동십자각 삼거리에서 흥인지문 사거리까지 이어진 도로로
현재이름 율곡로때문에 조선왕조의 상징이 갈라지게 됐어요.
일제의 민족혼 말살정책으로
일제 강점기에 도로 개설 명록을 내세워
즉 종묘와 창경궁을 강제로 분리한 일제
종묘는 역대 국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는 곳으로 조선 왕조의 핵심이자 정통성을 상징하죠.
일제의 속내는 조선왕가의 맥을 끊으려 한것.
당시 제 6호선으로 율곡로 개통 이후 외단 섬이 된 종묘.
민족혼 말살정책
1. 남산에 조선 신궁을 세운 뒤 참배를 강요함.
2. 경복궁 안에 조선 총독부를 설치함.
조선의 혼을 짓밟으려 한 일제의 악랄함.
일제의 상흔을 치유할 희소식...!
올해 종묘와 창경궁 담장길을 복원해 보행로로 연결된 예정이라고해요.
강제로 단절된 아픈 역사가 하루빨리 복원되기를...!
태국 농프라독에서 미얀마 탄부자얏까지 연결되어 무려 415km에 이르는 버마철도로 이 철도의 다른 이름은 죽음의 철도로
제2차 세계 대전 때 버마 전투에 참전 중인 일본군에게 군수 물자 이송 목적으로 설립되었어요.
1942년 10월부터 시작된 대규모 철도건설은 영국, 호주 네덜란드의 전쟁 포로 약 12만명을 투입
험준한 산악지대를 통과해야하는 철도는 울창한 열대우림 벌목뿐 아니라 강제징용자들이 거대한 암석 산을 깎아낸 건 정과곡갱이뿐!
지옥 그 자체였던.... 일본군의 잔인한 학대.
매일 20시간의 노동에 시달린 강제 징용자들은 수십만 명이 식수원으로 사용하는 강은 화장실로도 사용함.
이질, 콜레라 등의 질병이 만연되고 결국 부상과 질병으로 10만명 이상이 사망함.
전쟁 소모품으로 취급받은 강제징용자들.
동료들이 일하는 도중에 쓰러졌지만 도움의 손길을 줄순 없었다고 만약 그랫다면 일본군이 총으로 쐈을거라고.
강제 징용자들의 가슴 아픈 역사를 간직한 버마철도.
1920년 6월 대한독립군과 군무도독부의 연합부대가
500여명의 일본군을 처단하며 대승을 거둔 봉오동전투
독립군들의 항일 무장 투쟁에 불안해진 일본군은 독립군의 거점인 만주 간도지역 침공을 계획함.
일본군의 침공에 필요한 것은 명분이고. 오직 자신들의 명분을 위해 피의 자작극을 꾸밈.
당시 마적단이 들끓었던 간도 지역은 일제는 마적단을 매수한 뒤 우리를 공격하라고 요청함
1920년 9월 12일에 훈춘 시가지를 덮친 400여명의 마적단은 무고한 중국인, 조선인들에게 약탈, 방화, 살인을 함.
저작극 실행으로 일본 영사관을 방화하고 일본인 거주지까지 공격을 함.
명분 하나때문에 자국민까지 죽였네요...ㅠㅠ
마적단 토벌을 명분으로 결국 간도를 침략한 일본군은 그뒤 한인마을을 대습격함.
가장 참혹한 학살로 불리는 만주 용정 장암동 학살 사건은 1920년 10월 일본군은 조선인 남자들을 교회에 가둔뒤 방화함
심지어 밖으로 탈출한 이들까지도 처참히 살해함.
자작극까지 벌인 일본의 만행은..파도파도.. 계속 나오는 군요...ㅠㅠ
11위부터 1위까진 여기♥에서 확인해주세요!!!
<출처: otvN 프리한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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