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후 정종은 다시 왕위를 동생에게 물려주고 드디어 왕위에 오르게 된 이방원.
태종이 왕이 된 과정을 보면 심지어 존경받는 대학자 2명을 제거하죠. 많은 희생을 치른 태종, 정도전의 죽음으로 막 내린 재상 중심의 정치.
태종 이방원은 어떤 나라를 만들고 싶었을까?
일잘러 국왕인 태종, 조선의 뼈대를 튼튼하게, 백성을 위한 정치를 어떻게 할 것인가? 국왕이 직접 정치를 하겠다!
왕이 일한다는 국정 철학으로 태종이 처음 실행합니다. 역사상 왕이 일한다는 게 처음이라니...?
논의한 사안을 승인, 결재만 할 뿐, 특히 고려시대 500년간 귀족들이 회의 후 정책을 결정했죠.
회의에 직접 참여하는 국왕,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합니다. 내종실록에 기록된 일화 중에
양전은 조세 부과를 위해 농지와 경적자를 파악하는 작업입니다.
양전 사업에 부정적 의견을 낸 우정승,
태종과 회의하는 신하들은 풍부한 경험과 학식을 갖춘 대신, 그런 대신들 앞에서도 당당하게 의견을 표출한 태종. 태종의 뜻에 따라 결국 전국 토지 측량을 실시합니다. 실록에 나왔던 양전 사업!!
세종실록 지리지를 편찬합니다.
세종의 아버지인 태종, 태종의 아들인 세종.
정도전이 그린 국가는 좀 더 검증된 사람이 권력을 행사하고 책임을 진다면, 더 좋은 정치 체제가 아니었을까 한 선생님의 의견.
드물게 500년 이상 유지된 왕조 국가인 조선, 태종정치도 나쁘진 않아요. 태종의 구상은 연산군에 이르러 결국 실패로 판정나죠. 조선의 성군인 성종, 영조, 정조 , 비록 아쉬운 점도 있지만 500년을 유지한 저력. 그 가치를 인정받아 마땅한 나라 조선.
왕이 백성을 책임지겠다고 할때 왕에게 꼭 필요한 것은?
뛰어난 인재죠. 태종의 참모 중 아는 사람이 있나요? 가장 핵심적인 3인방이 있습니다.
비혁명판느 조선 건국에 반대한 세력이에요. 이들은 조선 건국에 반대했기 때문에 제거할 명분이 확실하죠. 하지만 조선 건국에 반대했어도 능력만 있으면 등용을 합니다. 이념보다 실용적인 선택을 한 태종. 숙적을 제거한 후에는 필요한 인재는 숙청하지 않고 등용합니다. 단순한 킬방원이 아닙니다.
조선의 기틀을 만들어 간 태종, 대표적인 제도가 6조 직계제에요.
6조 직계제는 실무기관인 6조의 판서들이 국왕에게 직접 보고를 올리는 체제로 태종 이전에는 재상인 삼정승을 통해 국왕에게 전달했죠. 중간 단계를 없앤 것. 태종이 처음 만든 제도를 세조가 부활 시킨 것.
국왕이 부서별로 직접 보고 받으므로 국정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국왕 의지대로 조정을 장악합니다. 반대로 왕이 피곤해진다는 단점이 있죠. 그만큼 업무를 모르면 회의 불가죠. 그러므로 공부를엄청나게 해야합니다. 분야별 업무 모두 마스터하고 일하는 국왕을 자처한 태종은 제도를 여러 번 바꿔가면서 6조 직계제를 정착시킵니다.
조선은 고려보다 발전된 국가입니다. 이익주 교수가 고려를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가 망해야 할 때 망한 것. 박수칠 때 떠난 고려 왕조.
태종의 또 다른 대표 업적은 호패제에요.
세조의 정책은 할아버지 태종의 정책을 벤치 마킹한거에요. 호패법의 원조는 태종이에요.
조선에도 교수란 관직이 있었는데 무려 종 6품 관직이라고 해요.
태종이 만든 호패에 담긴 내용은?
나이 파악이 가능해요.호패에는 신분 또한 표기되어 있는데 예를 들면 양인으로 표기하거나
신분이 낮을수록 정보가 많아집니다. 낮은 신분이 높은 신분으로 변조하는 걸 방지하기 위함이에요. 추가 정보로 외모적 특징도 들어가요. 호패는 노비를 포함한 모든 신분에서 필수품이에요.
호패제를 만든 목적은 무엇일까? 국가 통치의 기본은? 백성들의 수를 정확히 파악하는 거죠.세금, 군역을 부과하려는 목적이에요.그러나 인구 집계에서 빠져나가려는 백성들.
실질적 창업 군주로서의 면모, 세자 수업을 받은 것도 아니고, 애초에 왕이 될 운명이 아니었던 태종, 인재등용, 제도 개선, 철학까지, 훌륭한 왕 그 자체!! 그 외에도 수많은 업적을 남긴 태종, 비록 왕조 교체기 속에서 피의 숙청을 단행했지만, 조선의 기틀을 훌륭하게 마련한 일잘러 국왕, 태종.
출처: 차이나는 클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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