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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남들의 히든카드 M16 94회 - 한국 문화유산의 미스터리 16 히든카드 4~1위

by 로토루아8 2017.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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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관계냐 상관관계의 문제라고

탑돌이 후 무조건 출산했느냐 탑돌이 후 출산한 사람이 많이 있느냐


고려시대에 수많은 행사에서 행해졌던 탑돌이.

자유연애를 하던 고려시대에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함.

미스터리 기준은 사료가 부족해서 베일에 가려진 문화유산이어야할것.

2. 과거에는 불가능했을 것 같은 뛰어난 기술력

두 요인을 배제한 미스터리 내용의 +알파

천개의 불상과 천 개의 탑이 존재했다는 사찰로

역사상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을 사찰! 신라 말의 고승인 도선 스님

천수는 하늘이 내린 수명이란 뜻이라고해요.

탑이 3개 이상 있을 수가 없다고해요. 불교에서 부처님을 상징하는 탑은

여러개의 탑을 두는 경우는 드문 일입니다.

석탑이 17기가 존재함.

절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기준은? 석탑이 기준이라고함.

어떤 것을 모방하더라도 고유의 양식을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탑에서도 그런 모습이 나타나거든요

운주서 석탑은 11세기초~14세기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

쉽게 이해가 힘든 수많은 석탑과 불상의 존재로

풍수지리의 대가는 도선 스님을 주인공으로 해 꾸며낸 이야기 일 것!

다른 절과는 달리 무수한 석탑과 불상이 존재하는 운주사로

여러 개의 가설이 가능해요.

신흥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 만든 것이라는 주장이 많이 있어요


석가모니에 뒤이어 미래의 부처인 미륵이 나타나 세상을 구원한다는 신앙임.

운주사 설계자말에 의하면 부처님. 자리는 마련해 뒀으니 마음에 드는 곳으로!

무한 탑돌이 가능하다고 부처님이 찾는 고려시대 나이트클럽 운주사?

우리가 몰랐던 고려의 비하인드 스토리!

중국에서 넘어온 한족도 포함!

10명중 1명꼴로 고려시대 이민자의 비율이 8~10% 정도 된다고해용

이민자가 많았던 고려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인물은 대부분 귀화인임.

진포대첩은 원라에서 귀화해 고려군 사령관으로 활약했던 나세

당시 귀화인들이 유독 많았는데 고려 고종 때 고려에 귀화한 베트남 왕족의

후손 화산 이씨! 고려시대때는 귀화인들만 지낼수 있는 생활공간을 제공 후

역사 전문가의 추측으로는 천불천탑을 만들다가 중단됐을 가능성이 있다고함.

누가. 왜 만들었는지 밝혀지지 않은 운주사의 의문스러운 석탑과 불상들 

태생 자체가 미스터리인 문화유산임.


똑똑한 언어학자에게 새로운 문자 만들것을 지시했을것!

중국의 한자를 들여와 사용하던 조선시대는 새로운 문자를 누군가 만들었다?

세종대왕은 과연 누구와 함께 한글을 만들었을까?

그러나 훈민정음 창제를 반대했던 집현전 학자들

훈민정음을 반대하는  상소를 올린 집현전의 수장인 최만리

집현전 학자들이 만들었다면 수장이었던 최만리는 알았을 것

그러나 훈민정음의 존재를 몰랐던 최만리!

최만리의 주장에 대한 세종대왕의 반박?

최만리가 훈민정음의 존재를 몰랐을 것으로 추측되는 기록들

비밀리에 했을것으로 추측된다고함.

세종대왕의 자녀들이 도왔을 것이라고 추측한다고.

기록에 있다고해요.

죽산안씨대통보에 보면 한글 창제에 어려움을 겪던 세종에게 도움을 준 정의공주

정의공주와 함께 당시 세자였던 문종이 돕지 않았을까..

정인지는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유학자로 세종~ 문종 대를 지내며 

문화 발전과 정치 안정에 기여한 인물이에요.

세종대왕을 보필했던 정인지는 훈민정음의 존재를 알았을 수도 있다고

일본어와 비슷함

한자를 쉽게 읽기 위해 은. 는. 이. 가 같은 토씨를 다는 구결!

언어는 있지만 글자가 없던 상황임.

우리나라 백성들을 위해 만든 글자인 훈민정음!

세계를 통틀어 우리나라 고유의 언어체계를 가진 한글

한글의 위대함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창제 스토리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문자로 꼽히는 훈민정음.

과연 세종대왕 혼자만의 작품인지 그것이 궁금하다.

전생의 부모님을 위해 석굴암을 현생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지은 김대성.

아치형태 때문에 동굴이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은데

강도가 높아서 도구를 써도 다듬기 어려운 화강암!

단단한 화강암인 바위를 깨서 굴을 만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해요

건축물로서의 요소를 갖춘 석굴암

중국과 인도에서 유행했던게 석굴사원입니다.

석굴사원이 유행한 이유는 불에 타지 않는다!

석굴사원의 장점을 알게 된 신라인들

그러나 화강암 지대가 많은 우리나라에서 석굴사원을 짓기엔 무리임

석굴암 미스터리

1. 단단한 화강암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건축 기술

2. 밀폐된 공간 안에 있음에도 습기가 차지 않는 비밀

당시 습기가 생길 것을 예상하고 신라인들만의 습기 제거 기술이 있을것이라 추측

결로현상 방지를 위해 설굴암에 에어컨을 설치함

석굴암 내부에 바닥을 흐르는 물이 있는데

아직까지 풀리지 않은 석굴암 제습의 비밀


석굴암의 원리는 석굴암 바닥에 흐르는 물이 냉매의 역할을 해서 

온도를 낮게 유지해줌.

바닥보다 상대적으로 온도가 높은 벽면엔 습기가 맺히지 않는 원리임.

밝혀내기 어려운 석굴암의 또 다른 미스터리?

오차 1mm 로 정교함의 끝을 자랑하는 석굴암의 화강암 조각들

근대 서양의 건축 기술을 훨씬 앞선 석굴암.

석굴암에 담긴 신라인들의 놀라운 기술력. 현대 과학기술로도 밝혀내지 못한

미스터리

팔만대장경 제작기간 16년

500년 역사를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의 글자 수와 맞먹는 수준임

한 사람이라고 보기에는 많은 글자수인데

단순 쓰는 거만으로도 그 분량이 상상이상!

경전을 이해해야 제대로 쓰기 때문에

필체를 통일시키기 위한 교육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사경원은 고려시대 불교경전을 베끼기 위해 있었던 관아로

손으로 불경을 옮겨 쓰는 일이 발달했던 고려시대!

팔만대장경이 가장 신기한 건 한 지역에서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

이 두곳에서 만들었을 가능성은 없다고해요.

다른 지역에서 만들었다면 제작기법의 차이가 있었을 것!

현재 경상남도의 섬 남해도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고해요.

대규모의 인원이 필요했던 팔만대장경 제작과정?

종교적 관점에서는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 따져보면 어려운 일이라고함.

본래 고려시대의 실록을 보관할 정도로 안전했던 해인사.

해인사에 7번이나 불이 난다고해요.

천운으로 해인사의 위쪽에 있었던 대장경판은 불길에서 무사함.

한국전쟁 이후 국내의 절에 숨어있던 소수의 북한군이

해인사로 숨어든 북한군의 존재를 알게된 유엔군은 항공기 폭격으로

북한군을 제압할 계획을 추진함

폭격명령을 거부하고 기관총으로만 북한군을 제압함.

상부의 명령을 따랐다면 지금의 팔만대장경은 없었을지도..

김영환 대령의 굳건한 소신 덕분에 지금까지 지킬수 있었던 팔만대장경!

1975년 첨단기술로 만든 보관소로 옮겨졌던 팔만대장경!

장경판전에 보관되어있는데 바람이 통하는 벽면의 환기창이

창의 크기를 달리해 적정 온도를 유지해줍니다.

돌일한 필체. 팔만 개의 장경판을 단 16년 만에 제작?

여러 우여곡절에도 보존돼온 역사가 더 미스터리하다!

역사 이야긴..재밌음...ㅎㅎ

<출처:  xtm  잡식남들의 히든카드 M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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