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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는 클라스, 발로뛰는 역사학자 조법종,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역사

by 로토루아8 2019.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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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기식 역사라는 고정관념을 타파하면 좋겟다고.. 역사는 암기과목이 아니라 깨닫는 역사입니다.

과거 지식에서 지혜를 찾고 지혜를 넘어 지성의 역사로 기존 역사의 고정관념을 바꿔보자.

암기식 주의에 폐해가 단순히 입력하는 것에만 급급해 하잖아요. 나의 소신이나 내용으로 표현되지 않는.. 그렇다면 진짜 역사교육은 어떻게 해야될까요? 통찰력과 판단력을 길러주는 것.

꼬리를 무는 역사의 출발점. 역사의 어원찾기!

BC 1046~770 고대 중국을 다스린 주왕실

군신 관계 확립을 위해 3년마다 제사 의식을 거행함.

이때 치러지는 활쏘기 시합이 일정 점수 이상이면 재발령, 기준 미달이면 탈락.

활쏘기할때 저 멀리 과녁 옆에서 

사람이 서있는게 과녁과 사람이 합쳐져 역사 사가 됨.

막중한 역할을 맡은 史사

왕이 화살 적중 수만 기록하지말고 앞으로는 행실까지 기록하도록!

그래서 왕실의 모든것을 기록하는 자= 사관 史官

가장 객관적으로 왕실을 관찰한 존재이죠. 

쿤타킨테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는 저자 알렉스 헤일리의 외가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소설인데

1767년 아프리카 감비아에서 노예 사냥꾼에게 붙잡혀 미국으로 끌려온 흑인 쿤타킨테와 후손들의 생애를 담은 이야기임.

쿤타킨테 7대손이었던 뿌리의 저자 알렉스 헤일리는 할아버지의 고향 마을을 찾기 위해


마을마다 역사를 기억하는 그리오라는 구전 역사가들이 존재하는데 문자가 없던 시절 노래로 역사를 기억함.

우리마을의 첫 조상은 누구와 결혼해서 누구를 낳고 누구와 결혼해서 누구를 낳고 낳고..이걸 노래로 부르는 거죠.

 쿤타킨테는.. 사냥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는데 주푸레 마을에서 자신의 뿌리에 대해 들었던 것.

주푸레 마을이 할아버지의 고향인거에요.

역사란 사실을 기억하고 기록하면서 나는 누구? 근원적 물음에 답을 찾는 행위임.


인류 최초의 존재는 어떤 존재였고 어떤 시행착오와 아픔과 기쁨을 가지고 나로 수렴이 됐을까를 찾아가는..

꼬리를 무는 역사여행!

현생 인류 최초의 도구는?

교과서에서 한번쯤 배운 내용이죠.

무인도에서 가장 먼저 집어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나무 막대기를 먼저 드는것이 현실적이죠.

현재까지 최초 도구로써 유물은 돌도끼가 유일함. 돌을 이용한 적극적인 사냥보단 막대기를 이용한 채집이 현실적이죠.

인류 역사에서 더 중요한 도구가 있었던 걸 우리는 잠시 간과했던 것 같아요.

불은 자연에서 발견하죠. 도구는 인간이 가공을 함.

칡넝쿨, 버드나무등 나무줄기를 활용해서 옷을 만들어요.

현생 인류 타이틀을 건 두 종의 인류가 있어요.

네안데르탈인은 석기, 몽둥이 개별 사용과 가죽 망토를 착용하고 있죠.

마지막 빙하기 후기에 멸종하게 됩니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현생 인류로 번성한 크로마뇽인.은 석기와 막대기를 결합한 도구를 사용했죠.

끈을 활용한 복합석기를 발명함. 

강이나 바닷가 가면 뭐 잡아먹어요?

낚싯대나 작살로 고기가 잘 잡힐까요? 에너지 대비 효율이 떨어지겠죠?

엄청 노력을 들여야 잡을까 말까함.

끈을 조직해 만든 그물이라면?

식생활에 가져온 혁명적인 변화죠. 

끈이 실로 쓰이면서 옷을 꿰매 방풍, 보온성이 강화되죠.

크로마뇽인은 바늘을 이요앻 여러 겹을 덧댄 옷을 만들수 있었고 이는 혹독한 빙하시대를 견디게해준 원동력이 됐다.

- 고고인류학자 브라이언M페이컨-

최초의 도구를 잇는 최초의 발명품은?

도구와 발명품의 차이는?

도구는 자연의 재료를 약간 손질한 것. 발명은 완전히 성질을 바꾼 것.

급격한 생태변화로 발명된게 토기에요.

나무에서 열매를 따먹거나 간혹 동물을 잡아먹거나 저장용 토기가 필요치 않던 환경이었죠.

약 1만 2천년전 기온 상승으로 해수면도 상승하면서 해안선이 형성되면서 지금의 한반도 모습으로 변화하게 되었죠.

선사시대인들은 왜 강변, 해안에 살았을까? 먹을게 풍부하니까?

물에 조개를 넣어 끓이면? 시원한 조개탕이 되죠.


조리에 적합했던 토기. 해안 강변등에 살던 선사시대인이 먹고 버린 조개 굴등의 껍데기가 쌓여 이뤄진 유적이 패총이에요.

토기 빝동이 뾰족한 이유는?

모랫바닥에 꽂아 쓰기 위함임.

빗살무늬 이름의 뜻은?

여러가능성중 강력한 가설 하나가 상징적 의미일거라고.

토기를 뒤집어놓고 봤더니 햇살 무늬가 보임

방사선모양으로 빛나는 해를 뜻함. 하늘의 신을 숭배하는 의미로 햇살을 새긴것으로 해석된다고함.

역사교육의 핵심 화두는 왜??

두번째는 어떻게?

기존 역사교육은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 이거만 햇지만

왜 만들었지? 어떻게 만들었지? 끊임없는 질문을 통한 깨달음이 핵심이에요.

인류의 기원에서 민족의 기원으로~

2. 우리민족의 기원.

단군에서 파생된 배달의 어원

삼국유사에 보면

사람으로 변한 곰, 웅녀와 결혼해 단군을 낳았다고하잖아요.

또다른 단군의 기록을 보면

제왕운기에는

사람이 된 환웅의 손녀는 박달나무신과 결혼해 단군을 낳음.

삼국유사와 제왕운기 모두 단군이 등장해요. 둘의 단군의 한자가 달라요.

예로부터 밝음을 숭상해온 우리 민족.. 우리나라에만 있는 성씨는?



조선족이 운영하는 음식점 중에 박가네음식점있잖아요.

박가네= 조선인을 뜻하는 보통명사에요.

중국인을 부르는 호칭은? 왕서방

박혁거세 기원에 따라 박씨= 순수 한국 토착 성씨입니다.

박= 밝다 달= 땅, 벌판

한글 창시전 한자를 사용했잖아요. 비슷한 발음으로 쓰는거에요.

배달민족= 밝은 땅의 민족이란 뜻이에요.

삼국유사 속 단군의 정체는?

하늘= 탱글 tengri

탱그리를 숭배하는 제사장= 탱그리라 부름

탱그리의 고유어= 당골= 무당

당골의 한자식 표현이 단군인거에요. 무당이라는 개념이 제사장이에요.

제정일치 사회로 최고 통치권자가 당골이었죠.

당골+ 왕검 그래서 단군왕검.

북방 소수족인 곰을 숭배하는 케트족은 곰은 숲속의 사람, 주인이라고 생각을 햇어요.

후기 구석기에는 급격히 추워지면서 한반도에서 자취를 감춘 원숭이.

왜 곰을 신성시했을까? 곰에게만 있는 독특한 특성이 있는데 겨울잠을 자는 것.

겨울잠의 개념을 몰랐던 고대는  부활의 능력이 있는 곰을 숭배한 거죠.

정답이 아닌 가설 중 하나에요. 또다른 가설은 곰의 어원적 분석!

곰의 고유어= 감

일본에서도 신을 가미라 부르잖아요.

가미카제= 신풍

하지만 두번의 일본 원정 모두 강한 풍랑으로 실패를 하죠

신이 보낸 바람= 가미카제라함.

쑥으로 만든 음식은?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쑥.

뛰어난 약효로 의초라고도 불림. 우리역사에 마늘이 등장한건 언제?

중국학자가 단군신화는 후대에 조작된 것이라고하는데 우리가 알던 그 마늘이 아닙니다.

두가지 의미로 기록된 산은

매운맛 식물을 산으로 표현함 나중에 마늘이 들어와서 매운맛의 대표로 산이 마늘로 굳어진거임

동면이 끝난 곰이 찾는게 달래였다고

요, 순임금, 삼황호제라해서 중국 건국신화 왕들도 허무맹랑하게 표현을 했어요.

우리 삼국의 신화를 보면

 알에서 태어났다고 기록된 고구려시조, 주몽

신화는 조상을 신성하게 표현하는 방법이에요. 단구의 객관적 기록은? 문자가 없던 고대에는 오랜세월 단군신화는 구전되어온거에요.

구전되면서 덧붙여진 이야기로  아주 오래전 최초국가 고조선에서 시작된 단군의 역사

일본에 의해 나라를 잃었을 때 왜곡하고 폄하해서 우리민족에게 열등의식 심기에 혈안이 된 일본

단군의 역사성을 부정하기 시작함.

단군은 고려시대 몽고 침입에 대항하기 위한 창작물이라며 하지만 일본 주장에 반박할 증거가 없던 상황

왜냐면 일제강점기에 불타 없어진 기록들

조선사 편수 명목으로 조선의 책을 수탈한 일본은 우리 역사의 시작이 단군이라고 말하는 학자들은 다 쫓아내고

불리한 기록은 은폐함.

식민지부터가 조선 역사의 시작이라며 일본의 식민통치 정당화를 위한 작업을 함

그래서 단군의 역사성을 부정하기 시작

1990년대초 일본 주장에 반박할 결정적인 증거로 옛 고구려 수도에서 발견된

유구한 씨름의 역사에 감탄이 나오죠.

그런데 나무로 시선을 돌려보면

동물처럼 엎드린 자세가 아닌 단군신화 속 곰과 범으로 추정.

그림 좌측을 주목.

옛 고구려 수도 중국 길림성 집안시에서 발견됨.

고구려 벽화속 단군신화의 흔적.

단군 신화는 고구려 사회의 주류는 아니지만 비주류적인 전통신앙의 모습으로 남아있어요.

각저총, 장천 1호분 모두 5세기의 벽화입니다.

왜곡된 역사를 찾아내 연구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에요.

꼬리를 무는 역사의 핵심. 민족의 역사성을 찾는 핵심작업임.

삼국시대는 고구려, 백제 , 신라잖아요.

고구려의 흔적을 찾아 몽골땅으로 가면

터키인의 조상인 투르크족의 제국인데 돌궐 제2국 황제 빌게카간은

왕을 의미하는 칸.

황제 카간의 동생 퀼 테킨 동생추모비를 보낸 중국 양귀비의 남편인 당 현종

당현종이 직접 쓴 추도글은?

다르면에 황제 카간이 새긴 문구는?

3면에 새겨진 다양한 비문들

우리민족에 관한 내용은?

맥클린은

고구려를 지칭한 이름은 맥족.

맥족의 구려.

구려의 뜻은? 마을 , 고을, 골이란 뜻으로 골의 한자식 표현이 구려인거에요.

맥족이 사는 마을.

백은 밝을 박.

밝은 짐승과 관련된 종족이라는 것.

짐승사냥은 기마 수렵적 특징을 표현한거에요.

고구려 고분벽화 단골소재가 수렵도잖아요.

파르티안샷으로 배사법이며 말위에서 몸을 뒤로 돌려 활을 쏘는 걸 말해요.

고구려인의 사냥 연습을 구성한 것으로 추정됨.

기마에 꼭 필요한 3가지 도구는

쉽게 닳는 말발굽을 위한 편자

말위에서 안정적으로 활쏘기를 돕는 도구 등자


중동, 유럽 등지에서 발명한 재갈과 편자 

말을 탈때 상대방에 활을 쏘려면 두 손으로 해야하잖아요. 안정적인 활쏘기를 돕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등자에요.

내몽골 등지에 고구려인이 활동한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등자가 발견됨.

가장 오래된 등자그림이 무용총 수렵도임.

천고마비라는 사자성어 아나요?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기마 수렵인들이 농사를 짓나요? 말을타고~ 농작물을 빼앗는걸 뜻해요.

중국내륙 만리장성을 경계로 나뉜 두 세력

유목세력이 수확을 할때가 되면 정착세력에게 가져가 약탈을함. 원래는 가축과 곡식으로 물물교환을 약속한 농경민과 유목민

상화 교류관계에서 갈등이 발생하죠 가을 수확철 두려움에 떠는 농경민들. 그농민들은 수확하면 누가먹어요? 말탄 사람들이 먹잖아요.

그래서 자나깨나 말 살찔 거조심

그리 시작된 농경민족의 반격.. 수레를 타고오면서 말탄사람들을 공격하는거에요. 그러면 어떡해요 말타고가다가 뒤돌아서 활을 쏴야죠. 

그렇게 탄생한 파르티안샷입니다.

광활한 대륙을 누빈 고구려인. 대륙 문화 코드의 원형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맥구려가 고구려로 바뀐 계기는?

고구려인 스스로 지칭한 이름이에요. 구려= 맥족이 사는 고을 고을중에 으뜸은?

고구려= 맥족이 사는 최고의 마을이란 뜻

고씨의 구려라는 의미로도 해석하는데  고구려 스스로 자부심을 드러내는 이름이에요.

중국인들도 고구려 이름을 시기한거에요.

중국신 왕조를 건국한 왕망은 고구려를 침공했고 하지만 고구려가 막강하자 하급장수의 목을 베어간 왕망의 신하는 고구려의 왕을 잡아왔다고함

중국내에서도 비판적 평가를 받은 왕망은 부하의 칼에 찔려 역사의 뒤안길로..

기마 수렵적 특성이 담긴 고구려 국호.

하지만 중화권 농경민족과는 전혀 다른 기마민족의 전통을 지닌 고구려는 중국 역사 왜곡에 반박할 중요한 증거에요.

백제하면 떠오르는 건?

백제여인과 자식을 낳은 49대 일본 왕 고닌

한세대전 분들은 대부분 일제강점기에 일본들이 방탕한 이미지로 날조된 백제 의자왕 얘기를 많이 한다고해요.

삼천궁녀? 말도 안되는 이야기죠.

낙화암 사찰에 그려진 벽화인데

기록상으로보면 후궁 한 , 두명이 그랬을 가능성은 있지만 의자왕과 삼천궁녀는 일제강점기에 우리 역사를 왜곡 날조한 것이에요.

우리 국민조차 모르는 사이에 왜곡한 의자왕 이야기

특히 백제에 약했던 일본

 백제 국호에 숨겨진 뜻. 중국 역사서 수서에 기록된 백제를 보면

눈에 띄는게 바다에 관련된 내용이에요. 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백제는 맏백 伯

큰아버지를 일컬어 백부라하는데 백제의 첫번째 이름이 

한강. 임진강, 예성강, 서해안을 장악한 나루터 연합세력임.

으뜸 나루터가 열개 나루터가되고 백개 나루터가 된거죠. 해양강국의 위상을 나타내는 백제

바다를 통해 일본까지 진출한 백제는 일본 고대무노하에 영향을 끼침.

쿠다라나이

백제를 쿠다라 라고 부름

추측1. 백제는 큰나라가 변용돼 쿠다라로 음독.

2. 백제 구드래나루터가 쿠다라로 변용된것.

유교 불교등 일본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친 백제..

일본에도 가짜 모조품을 만들겠죠?

질 좋은 물건을 뜻하는 쿠다라 질좋지 않은 물건은 쿠다라 나이. 

동아시아부터 동남아시아까지 해양 거점 국가로서 해양강국 코드를 남긴 백제

검약하게 백성들과 잘 살자 해서 폐쇄적 해양 정책을 펼친 조선왕조

무장공비 침투사건 후 해안 철책을 설치 .. 다시 살려야할 문화가 바다 코드에요.

바다를 누빈 강인함이야말로 우리가 기억해야할 역량이죠.

신라 속에 숨겨진 뜻은?

신라 이름에 얽힌 몇가지 가설이 있어욤.

또다른 가설은 고유어 새내를 한자로 표기했다는 것.

역사학자 이병도 선생은

전혀 새로운 견해도 등장함

특징이 아닌 특정 사물로 해석. 쇠는? 철이잖아요.

인류 역사상 철이 중요한 이유는? 인류 최초의 금속기는?

청동기= 구리잖아요. 녹는 온도가 가장 낮은 구리는 제련하기가 쉬워요.

결정적 약점은 의소하다는 것이 문제임. 요즘도 가끔 구리선 잘라다가 팔아먹는 사람이 있다고 하죠?

반면 분포량이 두번째로 많은 철은 무기, 농기구등을 제작하죠. 철 다루는 것이 고급 기술이던 시대죠.

문제는 녹는점인데 철을 녹인 민족? 히타이트 족이에요.

오리엔트 세계를 호령했던 철의 나라 히타이트는 BC12세기 멸망후 신라에 철기술을 전파한 존재에요.

우리가 알고있는 도깨비는 일본 도깨비 오니 이미지가 전해진 것

망치와 방망이로 두드리는 이미지임 설마..대장장이?

도깨비의 트레이드마크가 불이잖아요.



무리를 이뤄 생활= 도깨비 무리

노동요= 도깨비 노래임 씨름도 잘하고 .. 서양에서 온 사람을  우리가보기엔 도깨비처럼 보였던 거죠.

도깨비의 특징이 어눌한 말투와 뒤덮인 털. 그렇게 악한 것 같진 않고 철을 다루던 유이민들의 모습을 도깨비로 형상화했을 것으로 추정.

신라인들 눈엔 망치도 도깨비방망이로 보였겠죠.

김시가 금이 된거에요.

신라왕실의 성씨는? 김이잖아요.

원래 금춘추, 금유신으로 불렸는데  건너건너 건너 기술과 문화를 가지고 온 일부가 섞이고 그런 존재일 가능성이 있어요.

도깨비 그 뿌리가 어디인지는 알수 없음.

돗= 불이나 씨앗을 의미해요. 돗애비가 돗채비가 도깨비로 변함.

불씨 애비로도 해석해요.

금에서 김으로 바뀐 이유는 가장 유력한 설이 조선왕조때 바뀌었다고해요.

음양오행설에 따라 조화와 통일을 강조하는 세계관으로 땅의 오행은 목화토금수잖아요.

음양오행설을 중시한 조선왕조는 목에 강한 금을 꺼린 이성계.

하지만 하나의 설에 불과해요.

다시 금씨로 돌아간 사람이 있어요.

지위자 금난새씨의 아버님이 원래는 김수현씨인데

자식분들은 순 한글이름만 지은거에요.

원래 금해인데 김해라고하죠. 금마는 한글 그대로 금마라 호칭. 금요일도 그대로

신라의 특징이 쇠의 나라를 상징하는 금씨

농경문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문화와 종족을 포용하는 쇠나라라는 역사를 담고있는 국호

별칭이 있어요. 계림.

1일 1알로 성스럽고 신비한 동물로 인식을 함. 농경사회에선 알이 풍요의 상징이잖아요.

닭을 신성히 여긴 신라인

삼한시대

진한의 한 마을에서 발견된 알. 알에서 태어난 박혁거세는 신라를 건국하였고 신라인들은 알을 성스럽게 여겼다.

알을 숭성한느 문화를 지닌 신라.

매를 숭배한 마한을 흡수한 백제.

고구려인들이 숭상한 동물은? 

다양한 설 중 하나인 개구리.

주몽의 어머니인 유화부인은 금와왕과 결혼하죠.

금빛 개구리에서 따온 이름인 금와왕.

변태후 물속에서 나오는 개구리는 물과 육지 양쪽에 서식을 하죠.

그렇다면 인간은? 태아일땐 어머니 뱃속 양수속에 양수 물속에 있죠.

출생후엔 땅에서 사는 인간. 인간의 모습을 닮은 개구리.

역사와 문화의 흔적들을 바탕으로 여러분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나는 누구인가?

삼국시대보단 조선시가 더 친근하다고 삼국시대 DNA가 우리에게 남아있냐고

알게모르게 이어져온 삼국의 이름.

고구려가 고려가 되고 고조선이 조선이 되고 대한민국의 한은? 삼한시대의 한을 계승함.

오늘 공부한 역사는 하나의 가설입니다.

정답이 없는 역사. 유력한 설이 있을 뿐.. 더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학설이 등장하면 유럭한 설이 또 바뀌는 거에요.

민족주의에 함몰되는 것은 금물입니다. 숨은 역사를 찾아보자는 취지 다양한 시각과 자료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공유하고 토론하고 합의점을 찾아가는 것이 역사입니다.

나의 정체성을 열린 마음으로 찾아가는 과정에서 통찰력과 판단력은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출처: jtbc 차이나는 클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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